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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ug 26. 2019

시간이 멈춘 마을

서천 판교의 맛과 느림의 풍경 

기차를 타고 서천으로 들어가기 위해 판교역이라는 곳을 지나쳐 갈 수 있다. 서천읍과는 거리가 좀 떨어져 있지만 판교역은 그 지역에 자리한 기차역이 분명하다. 그런데 원래 판교역이 있던 곳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그곳에는 나름 맛집들이 몰려 있는 곳이어서 주말에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이 느리게 가는 마을 입구에는 애국지사 고석주 선생상이 세워져 있다. 충남 논산 태생으로 하와이로 이주해서 언론인으로 활동을 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1919년 군산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한 다움에 1년 6개월의 옥고를 치렀으며 감옥에서 나와서도 독립투사로 조국 광복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다가 1937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곳은 얼마나 번성을 했었을까. 가능해보기는 힘들지만 서천이 모시로 유명하기 때문에 모시를 생산하는 충청도 8개 읍을 뜻하는 ‘저산 팔읍’(서천·한산·비인·홍산·임천·부여·남포·정산) 보부상들의 큰 장도 판교에 섰다고 한다. 

판교는 1930년 장항선(당시는 충남선)이 개통하면서 상업의 중심지로 컸다. 나무판자로 다리를 놓았다 해서 널다리(판교)라 부르던 작은 마을에 논산·광천과 함께 충남 3대 우(牛) 시장으로 꼽힐 만큼 큰 시장이 들어섰던 곳이기도 하다. 나무판자로 다리를 놓은 것을 보면 자동차는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번성하던 도시는 1980년대 우시장이 사라지며 쇠락했다. 장항선 직선화로 판교역은 2000년대 들어 폐역이 됐다. 역사 건물은 이제 판교 특화음식촌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는데 그중에서 냉면이 맛있는 집이라는 한 곳으로 들어가 보았다. 우윳빛깔의 육수가 조금 독특해 보인다. 진득한 맛이 괜찮다. 

판교역을 끼고 왼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아직도 ‘반공 방첩’ 표어가 희미하게 벽에 남아있는 옛 농협 창고 건물을 지나 주민들이 ‘공관’으로 불렀던 판교 극장 건물뿐만이 아니라 옛날 방식으로 술을 만들었던 동일주조장 건물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 불과 11명의 일본인이 판교에 살면서 5500여 명의 마을 사람들을 쥐락펴락하며 농토와 상권을 장악했다. 마을의 중심의 적산가옥에 살던 일본인 지주는 조선인 소작농들이 일본말로 “천황 폐하 만세” “쌀 좀 주세요”라고 해야 새경을 내줬다고 한다. 

서천군은 지난해부터 판교마을 ‘스탬프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판교면 행정복지센터(면사무소)나 판교역에서 지도를 받은 뒤 판교 극장, 우시장, 적산가옥 등 6곳에 비치된 도장을 찍어 가면 마을 옛 건물들이 그려진 기념품 엽서를 선물로 준다고 하니 도전해보는 것도 어떨까. 우선 생각 외로 맛집들이 눈에 뜨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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