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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ug 28. 2019

죽주산성 (竹州山城)

교통의 요지에서 몽골을 물리친 곳

경기도 안성에 있는 산성중 대표적인 곳은 죽주산성이다. 안성 일대를 마한, 변한, 진한시대에 마한의 한 수장국가였던 목지국이었다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죽주산성은 구축된 지 오래된 산성의 흔적으로 고려시대에는 몽골군을 막기 위한 역사적인 요충지로 임진왜란 때에도 활용되던 곳이었다. 죽주산성은 지금도 안성의 역사적인 자원이자 산책로로도 활용되는 곳이다. 

안성의 죽주산성은 외부를 방어하는 외성과 내부에 축조된 내성의 형태로 만들어져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왜성의 영향을 받아 치성을 만든 것이 눈에 뜨인다. 서울에서 경기도에는 영남길이 만들어져 있는데 다양한 경로중 용인 한택식물원에서 안성 죽주산성까지 이어지는 8코스가 죽주 산성길이다. 

주차장이 있는 곳에서 죽주산성의 입구인 성문까지 올라가기 위해 걸어서 올라가 본다. 

이곳 부근에서는 매년 죽주산성 대축제를 열고 있다. 가을이 시작되면 죽주산성 축제를 준비하는데 올해로 16번째를 맞이하는 축제는 산성 축조 이후 단 한 번도 적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죽주산성과 몽고군의 침입에 맞서 대승을 이끈 송문주 장군의 위상을 후대에 알리고자 매년 열리고 있다.

녹음이 짙게 내리 우고 있는 이곳은 더위를 피하기에도 적합한 곳이기도 하다. 북진하던 신라가 축조한 이래로 조선시대까지 이 일대를 지키던 요새의 흔적이 이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경기도 영남길의 △코스경로 - 황새울입구 ~ 지통암 ~ 비봉산정상 ~ 죽주산성북문 ~ 동문 ~ 남문 ~ 죽주산성휴게소 ~ 미륵당 ~ 매산리석불입상 ~ 농어촌공사죽산지소 ~ 봉업사지5층석탑 ~ 죽산면소재지 △거리 - 13km △소요시간 - 4시간 30분 △난이도 - 보통 이다. 

구주성 싸움의 경험으로 몽고군의 작전과 장비를 잘 알아 적절히 대응하였으므로, 성안의 사람들이 신명(神明)이라 일컬었다고 부르던 사람이 송문주 장군으로 이 곳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송문주장군의 상을 볼 수 있다. 

송문주 장군은 1231년(고종 18) 구주성(龜州城)에서 몽고군의 공격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워 낭장(郎將)에 초수(超授)되었다. 1236년에는 죽주 방호별감(竹州防護別監)이 되었고, 다음 해에 몽고군이 죽주(竹州)를 공략하자 15일 동안을 싸워 끝내 적을 물리쳤다. 

1236년 몽골군은 6월에 압록강을 건너서 서북면으로 내려와 8월에는 자주(慈州)를 함락시키고 남경(南京)에 주둔하며 온수군(溫水郡)까지 공격하였고, 9월 임술(8일) 죽주를 공격하였다.

당시 몽골군이 인유(人油), 관솔불, 쑥 풀 등을 짚에 뿌리고 화공을 펼치자 때맞춰 죽주산성 안에서 병력이 한꺼번에 성문을 열고 나와 몽골군을 기습해 숱한 몽골군을 베었다. 결국 보름 만에 몽골군은 공성 무기를 불태우고 물러갔고, 죽주산성은 무사히 보존되었다. 

죽산 사람들은 송문주를 가리켜 "송 장군이 아니었다면 우리 조상들께서는 어륙(魚肉)이 되었을 것이고, 조상 없이 우리가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죽산 사람들이 이렇게 밭 갈고 우물 파서 부모 처자 데리고 살아가는 것은 모두 장군의 은혜다"라며 송문주를 칭송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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