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속성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은 잘못 해석된 이야기다. 지금이야 주변 지인이 재산이나 소득이 늘어나면 시기한다는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원래 농경사회에서 두레정신은 바로 이웃을 도와주고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는 것에서 출발한 것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가서 농사를 도와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힘드니 배가 아픈 척을 해서 빠져볼까라는 행동이 원래의 의미다. 한국사람들은 희한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진보라고 말하면 가난해야 하고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에 무언가 동질의식을 느끼는 수준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최근 조국 교수 일만 보아도 그렇다. 어떻게 보면 정보력 있고 재력 있는 집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샛길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불법은 아니다. 물론 없는 집안에서는 그런 정보력도 접하기 힘들고 인맥도 없어서 그 길로 가는 것이 힘들 수도 있다. 그건 집안의 문제지 정유라가 말한 것처럼 돈도 능력이라고 말하며 불법적으로 있는 지위를 이용하여 권력형 비리를 저지르는 것과 동일하다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필자 역시 군대 갈 때 누군가가 아니 부모님이 배웠던 사람이라면 병역특례를 알려주었을 것이다. 당시 병역특례제도가 있었고 자격증이 있어 갈 수도 있었지만 그 제도 자체를 알지 못해 현역으로 다녀왔다. 만약 그 당시로 돌아간다면 현역이 아닌 병역특례를 선택해서 월급도 받으면서 병역의 의무를 마쳤을 것이다. 있는 집안 혹은 배운 집안과 없는 집안의 가장 큰 차이는 재력이 아닌 정보력일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아는 게 없는데 무엇이 보이겠는가.
한 명의 인재가 여러 명 나아가서는 수십 명을 먹여 살린다는 것은 비단 회사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특출하다고 말할 수 없을 수도 있지만 어떤 분야에서 자신만의 브랜딩을 구축한 사람은 그것이 바람직하고 괜찮다면 주변 사람들과 함께하기를 바라며 이끌어 간다. 일명 리딩 하는 사람이 있고 자연스럽게 가족이나 지인이 그 길을 같이 따라가게 만든다.
그런데 희한하게 그런 걸 시기하는 사람이 있다. 능력을 갖추기에는 너무 시간을 허송세월 보냈고 지금에 와서 하자니 막막하다. 쉽게는 가고 싶고 누군가가 앞서 나가는 것을 보면 그냥 싫은 것이다. 필자는 어릴 때 철거촌 사람들이 강제로 이전된 지역에서 6년을 살아본 기억이 있다. 어릴 때지만 그때의 기억은 생생하다. 약자의 적은 강자가 아니라 약자라는 사실 말이다. 일명 약자는 자신보다 더한 약자를 괴롭히고 빼앗는 습성이 있다. 물론 그렇지 않고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적지 않은 약자가 더 힘없는 약자를 공격한다. 최근 사회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강력사건은 약자가 자신보다 힘없는 약자를 공격해서 생기는 것이 99%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변 사람이나 너무나 가까운 지인이라면 항상 말하는 것이 있다. 불로소득에 아예 관심을 끄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적금 이자율이 높다고 해서 흔들리지 말고 그냥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것을 최고로 치라고 말이다. 가만히 있어도 늘 수 있는 돈에는 한계가 있다. 그걸 바라다보면 감언이설에 솔깃하고 있는 돈마저 날릴 수 있다. 부산저축은행사 태나 다단계, 암호화폐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TV나 드라마, 연애 프로, 스포츠 등을 전혀 보지 않는다. 아직 내 능력을 온전하게 개발하지도 못했는데 그걸 볼 시간이 있다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한다. 물론 재미도 없다. 연예인 가족이 나와서 먹고 즐기고 여행 가는 것을 왜 필자가 보고 있어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대로의 삶이고 필자는 필자대로의 삶이 있다. 그런데 희한하게 돈을 벌기는 원하고 잘 살기를 바라면서 기본적인 노력(밥벌이) 외에 더 이상의 노력 없이 TV를 보면서 웃고 즐기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래 놓고 진보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근거 없이 깨끗함을 요구한다.
정말 개천에서 용이 나기를 바라는지 의구심이 든다. 조국 교수의 딸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기회의 평등을 생각한다. 없으면 정말 미치도록 노력해야 벗어날 수 있다. 학벌을 이기려면 그 학벌을 가진 사람이 가진 능력의 2배가 되어야 한다. 학벌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않은 사람의 능력이 똑같다면 그건 의미가 없다. 한국사회가 그렇다.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처절하게 노력하고 나서야 할 말이 있는 법이다. 왜냐면 사회는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책을 싫어한다는 사람을 수없이 만났다. 권총사격 선수로 나가길 바라면서 권총을 분해 조립하는 게 싫다는 말과 똑같다. 그러면서 그런 말을 한다. 올림픽 선수 집안에서 태어난 자연스럽게 그 환경을 접한 사람들은 문제가 있으니 자신은 원래 거리가 아닌 조금 더 짧은 곳에서 쏠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다.
어떤 분야에서 그걸로 먹고 산다는 것은 프로의 마인드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프로는 아마추어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프로로 도달하는 길에 지름길은 없다. 자신이 해야 하는 기본 일을 하고 나서도 나머지 시간을 온전히 쏟아부으며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쉴 거 다 쉬고 실패해도 다시 되돌아 갈 수 있는 길은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들만이 갈 수 있는 특권(?)의 길이다.
사회의 불평등과 기회의 불평등을 이야기하기 전에 뼈를 깎는 노력을 했는지 본인에게 자문해보자. 그런 사람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아직도 갈길이 멀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