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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02. 2019

창동예술촌

오동동의 추억과 창동의 소통

오래간만에 다시 찾은 창원의 창동예술촌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마산 예술촌은 크게 세 블록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마산 예술 흔적과 문신예술, 에꼴드 창동으로 나뉘어서 볼 수 있다. 골목마다 나름의 색채가 부여가 되어 있으니 돌아보면서 차이를 확인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다양한 분들이 이곳에서 환한 얼굴을 만나볼 수 있게 되어 있는데 마치 과거사를 보는듯한 사진에서 힘들고 고단했지만 마음만은 즐거웠던 이들의 삶이 교차되는듯한 느낌의 공간이다. 오동동과 창동 일대에서 열리는 다양한 문화행사는 바로 이곳에서 열린다. 

예술가들이 더 약진하여 예술가들의 혼이 깃든 멋진 거리를 만들어서 하루에 몇 번을 걸어도 질리지 않는 거리를 만들어 주어서 관광객들이 하나라도 놓치면 아쉽게 만들어주면 이곳이 명품화되는 것은 멀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창원시 관광안내소 역시 감각 있게 만들어져 있다. 

벌써 2019년도 하반기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창동예술촌 예술학교에서는 제9기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다. 요일마다 운영되는 프로그램이 다르니 확인하고 이용하면 된다. 

창동 예술촌은 월요일에 예술인 이야기로 시작을 한 적이 있었다. 창동 예술촌은 볼만한 것이 있기도 하고 색다른 도시의 느낌을 전달하고 있기며 구석구석에 발전을 할 여지가 있는 곳이고 실제로 투자도 많이 진행되고 있다.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곳은 지방도시의 구도심 재활성화를 위한 사례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오늘날에 추구하는 도시의 구도심 재활성화는 어떤 모습일까? 도시재생으로 나아가고 있다. 아무래도 기존 도시의 원형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도로를 보강하고 건축들도 최대한 기존의 느낌을 풍경 속에 살포시 녹아들게 하는 것이 좋다. 

오동동에서는 문화, 추억, 정취의 거리가 이어지는데 오동동에는 소리길과 통술골목, 문화의 거리, 아귀찜 거리로 이어지고 창동은 젊음의 거리를 콘셉트로 조성되어 있다.  

평화의 소녀상과 다른 느낌의 조각상이 있어서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이 상은 인권자주평화다짐비로 마산이라는 지역은 일본제국주의 조선 침략 기지이자 수탈도시로 활용이 되었다. 일제의 침략전쟁 당시 일본군의 위안부 동원을 위한 중간집결지가 바로 이곳이었다. 

이 조형물은 일본군 위안부로 참혹한 고통을 겪은 피해자를 통해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해선 안된다는 의지로 꽉 쥐고 있는 두 손은 지키려는 의지를 나타내며 천은 한과 희망,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연결을 의미하고 있다.  

전에 없었던 역사 속 내용이 있다. 3.15 의거 발원지로 당시 2층 목조건물이었던 민주당 마산시 당사 건물 앞이라고 한다. 1960년 3월 15일 민주당 마산시 당사에서 민주당원들이 선거 부인 공고문을 게재하고 선거무효를 외치며 의거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1960년 3월 15일 이승만 자유당 독재 정권이 장기집권을 위해 부정선거를 자행하는 과정에서 민주당과 마산시 학생들은 독재와 불의에 더 이상 참지 못해 분연히 일어나 항거 한 투쟁의 역사로 이승만은 당시 부통령인 이기붕을 당선시켜 장기집권을 노렸지만 결국 부정 선거로 인해 자멸하고 말았다. 다음날 마산만에서 마산상고 학생이던 김주열군의 시신이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떠 오르자 시위는 부산 마산을 거쳐 서울로 그리고 광주로 확산되면서 4.19 혁명으로 이어졌다. 예술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민주화의 흔적이 남아 있는 창동예술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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