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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10. 2019

공부의 시작과 끝

고추로 유명한 곳 구기자로 만든 음식을 먹어볼 수 있는 청양에 자리한 청양향교는 지난여름에 충효 예교실을 운영했다. 청양향교 인근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참여해서 운영된 그 교실에는 사자소학, 인성교육, 생활예절, 한자 쓰기를 배웠다고 한다. 소학이란 과연 무엇일까.  소학은 조선 전기 사림파들에게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도덕적 기준을 제공하였다. 공부의 시작과 끝이 어디 있는지를 살피고 기득권을 가지고 권력을 누리려는 훈구파들을 소인으로 몰아버렸다. 

몸을 바르게 세우고 배운다는 의미의 기본을 담은 소학은 조선시대에 상당 시간 금서로 자리하게 된다. 젊은 학자들이 정계에 진출하면서 훈구파를 공격하자 이들은 정치적으로 사림파를 제거하는데 이것이 이른바 사화의 시작이었다. 1498년의 무오사화 1504년의 갑자사화는 '소학'을 중요한 학문적인 근거로 삼는 사람들을 일시에 제거하게 만들었다.  

사화 이후에 향교나 서당에서 소학은 한동안 읽히지 못했다.  설립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청양향교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이후 1851년(철종 2)·1874년(고종 11)·1904년에 중수하였다.

청양읍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한 청양향교는 향교의 전형적인 향교의 배치를 하고 있으며 뒤에 나지막한 야산이 있어서 주민들의 산책로로 이용되는 곳이다.  

학문의 기본이라는 소학이 금서에서 풀리게 된 것은 선조 1년(1568) 사화로 사형을 당했던 조광조가 복권되면서 소학 역시 다시 권위가 회복되고 율곡 이이가 소학언해를 내면서 지식인들의 필독서로 다시 들어오게 된다.  

태풍이 지나고 다시 먹구름이 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지금도 예절교육 때 일부를 배우는 소학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데 사용되었던 것은 중국에서 여덟 살이 되면 들어가 공부하던 학교를 지칭하는 것이 소학이었기 때문이다. 

교육에 있어서 근본을 따지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처음에는 좋은 취지로 학종(학생부 종합전형)이 시작되었지만 대학을 들어가는 또 하나의 편법처럼 사용되어서 최근 어떤 후보자가 곤욕을 치루기도 하였다.  공부의 시작과 끝은 자신의 일상을 규모 있게 만들어가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의 역사에서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발자취는 크다. 이들은 소학을 초학 교재로써의 입지를 확고하게 다지게 하는데 적지 않은 노력을 했다. 그 노력으로 17세기 이후에는 당연히 읽고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만 하는 책으로 오랜 시간 자리해 왔다.  

청양향교 같은 곳에서 배움의 근본은 어지러운 일상을 바로 세우고 나아가서는 균형적인 삶을 만들어가는 데 있을 것이다.  제도는 좋은 취지로 시작될 수 있지만 사람에 의해 악용될 수가 있다. 그러나 근본으로 나아가는 내용이 담긴 책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쉽게 오염되지 않는다. 우리의 고전에서 인문학을 찾아야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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