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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14. 2019

재실 (齋室)

논산 병사리 파평 윤 씨 재실

명절 때만 되면 제 사 등으로 인해 집안 갈등이 단골 뉴스로 등장한다.  제사를 지내야 하는가 지내지 말아야 하는가를 것을 떠나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이야기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도와줄 수 없고 그 상황을 바꿀 수 없는데 상대방이 불편해하는 질문이나 이야기라면 아예 안 하는 것이 낫다. 그것이 집안이 화목하고 모이게 하며 즐겁게 갈 수 있는 방법이다.  명절 하면 생각나는 것은 바로 제사와 성묘다. 



논산에 자리한 파평 윤 씨 덕포공 재실은 1630년대에 윤순거가 선조의 묘소를 지키기 위해 지은 수화사와 덕포공의 재실을 포함하여 한말에 세운 영사당, 성경재, 관리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주 이 씨, 안동권씨의 뒤를 이어 파평윤씨는 조선시대에 가장 많은 문과 배출자를 내었던 가문이다. 

재실이 있다는 자체는 그 가문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꼭 제사만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재실의 기능으로는 시향제나 묘사의 준비 장소로서의 기능이지만 선산·종산·위토 등 문중 공유재산 문제, 재실의 유지나 수축 문제, 유사나 산지기의 문제 그리고 그해 제례 과정 전체 평가 등을 논의하는 종회 장소로도 활용이 된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덕포 선생 재실 고택은 열려 있지 않았는데 명절이 가까이 와서 그런지 몰라도 열려 있었다. 집안의 사람 맞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파평윤씨의 중시조인 윤관은 여진족을 정벌하고 고려의 재상인 문하시중으로 오르며 숙종대 후반에서 예종대 초반에 걸쳐 여진을 정벌하고 9성을 개척한 사람으로 역사책에 그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많은 관료를 배출했던 파평윤씨라서 그런지 몰라도 묘소에 문인석과 비가 세워져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문중은 조선시대에만 592명의 문과급제자를 배출하였다. 파평 윤씨의 재실이 논산에 있지만 본관인 파평은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파평면이다. 파평윤씨의 시조는 윤신달으로 고려 태조(왕건)를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워 삼한벽상공신에 올랐다.

파평윤씨 가문에서 알려진 사람으로는 여진 정벌을 하고 9성을 쌓은 윤관이 있으며 잉어를 먹지 않는다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파평윤씨가 이곳 논산의 노성으로 이거한 이후에 연산의 광산김씨, 회덕의 은진송씨와 함께 지역에서 3대 명문가로 자리 잡게 된다.  

가문의 힘이 올바르게 쓰인다면 공평하면서도 지역주민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할 수 있다.  여러 대에 걸쳐 높은 벼슬을 하여 자기 집안의 운명을 나라의 운명과 같이하는 집안을 교목세가 (喬木世家)라고 부른다.  윤관의 아들인 윤언식은 고려 인종(仁宗, 1109~1146) 대에 요직을 두루 거치며 문하시중까지 지냈으며, 동생은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금강거사 윤언이(尹彦頤, 1090~1149)다. 좋은 가문은 보통 부모와 형제자매가 모두 그 품격을 같이 타고 태어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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