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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07. 2015

연애를 방해하는 이유

나이 든 사람은 힘들다. 

주변에서 나이가 들었는데 결혼을 정말 하고 싶은(?) 남자나 여자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들이 하는 말은 하나같이 똑같다.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과대평가해서 결혼을 할 이성을 못 만나는 것이다. 결혼 적령기를 넘어서 결혼을 못한 남자나 여자들을 보면 크게 세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 


첫 번째. 상대방을 이해할 생각도 없는데다가 공감능력까지 떨어진다. 남자와 여자는 근본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생각 구조가 다르다. 선택받지 못했던 남자나 여자는 분명히 그 이유가 있다. 차라리 결혼을 했던 이성이 훨씬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만날 수 있고 헤어질 수도 있지만 같이 생활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이성을 사귀는 것과 전혀 다른 개념이다. 상대방과 같이 살다 보면 미쳐 보지 못한 부분을 보게 된다.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을 같이 받아들여야 한다. 어느 한쪽만 선택하는 것은 극히 이기적인 생각이다. 어쩔 수 없이 이성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고 단련(?)이 되어간다. 


두 번째. 한 방에 모든 것을 뒤집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여자들은 적지 않게 연하를 만나는 경향이 있다. 정말 연하를 좋아해서 만나는 것보다 나이가 들었지만 난 이 정도 가치가 있어?라는 증명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물론 사랑을 하는데 있어서 나이는 상관이 없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이목 때문에 그럴듯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라면 연애는 계속 실패한다. '나 이 정도 되는  사람이야'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진정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인가 선택해야 될 때이다. 사람들은 상처받기 힘들어서 먼저 찼다는 표현을 한다. 그럼 덜 상처받겠는가? 


세 번째. 이상한 기준을 잡아놓는다.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기준을 보고 만난다. 기준을 정해놓으면 사람이 아닌 사회 잣대가 당신에게 상처를 입힌다. 굳이 일본 애니메이션인 강철의 연금술사를 언급하지 않아도 세상은 기본적으로 '등가교환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다. 당신의 가치는 생각하지 않은 채  원하는 상대방의 기준은 너무 높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일이다. 불행하게도 상대방도 당신의 가치를 매기고 있다. 


감정이라는 것이 있어서 모든 것을 잣대로 나누어지듯이 남녀의 관계를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이 손해 보기 싫다는 생각에 기준 1, 기준 2, 기준 3, 기준 4 + 남이 볼 때 괜찮을까? 색안경을 그렇게 쓰고 사람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까. 


모든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나 사람과 정말 친해지기 위해서는 진심을 다하는데 있다. 자신이 부족한 것이 있을 때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에 상처를 입는다. 상대방이 그런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누군가가 지적하는듯한 말에 자격지심으로 미리 보호막을 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사람들은 고정관념이 더 고착화되는 경향이 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작처럼 화려한 날갯짓에 사자처럼 그 힘에 지배되는 존재가 아니다. 


ps :  뒷부분에 나이에 상관없이 사랑을 하는것은 상관이 없다라고 언급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앞쪽에 언급된 글로 인해 발끈하는 사람은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되는것 아니겠는가? 내 말 한마디에 인생에 대한 기준을 바꿀 것인가? 적지 않은 사람들을 볼때 사람과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외모, 경제적 조건으로 판단해 만나놓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더이다. 경제적인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죽을 때까지 돈때문에 고민한 적이 없는 괴테조차 '지갑이 가벼우면 마음이 무겁다'는 돈에 대한 명언을 남기고 있다. 


연애나 결혼을 못한 사람이 모두 공감능력이나 이해할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혼자 자유롭게 사는것 또한 나쁘지 않다. 그러나 끊임없이 이성을 만나고 결혼하고 싶다 혹은 연애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그러니 문제가 되는것이다. 어떤 노력을 했는가?  이성을 이해하려고 무던히 노력한 적이 있던가. 그리고 소개해달라고 주변사람들을 괴롭힌다.  사귀지는 않더라도 이성친구는 필요하다. 세상의 반이나 되는 이성을 포기하고 세상을 잘 살았다고 볼 수 있을까. 나 역시 이성이 좋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여기에 내 이력을 써서 누군가와 사귀고 싶다는 생각따위는 하지 않는데 넘겨짚지 말자. 하루에 수천명이 들어오는 내 블로그에도 한 번도 이성을 찾는 그런 글따위 포스팅한 적이 없다. 책좀 읽고 생각의 깊이를 더해보자. 나 역시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매일매일을 노력하고 읽고 살아간다. 사람은 읽음으로 완성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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