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벌국 (沙伐國)

상주 외서면의 우산마을

이름도 생소하게 들리는 사벌국은 지금의 상주의 외서면에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소국이다. 사벌국이 자리한 상주는 예로부터 경상도와 그 위쪽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에 있어서 정치적인 세력이 빨리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사벌국이었던 이곳은 첨해왕 때에 사벌주를 취하여 주(州)를 설치하였고, 법흥왕 11년 처음으로 군주(軍主)를 두고 상주로 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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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마을이 자리한 이곳은 우산동천이 흘러가는 곳으로 면의 대부분이 산지를 이루는데, 남쪽 경계에 노음산, 북쪽 경계에 남산이 솟아 있다. 문화유적은 백전리에 도요지, 우산리에 대산루·병암고택·우복종가·우산동천(愚山洞天), 연봉리에 연봉정(蓮峰亭)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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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마을을 거닐어 보며 마침 찾아온 연휴를 만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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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마을 장승이 자리한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병암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병암 고택은 크지는 않지만 이곳 주변에 말벌이 있는지 조금 조심해서 둘러봐야 할 듯하다. 병암 고택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30호로 지정이 되어 있으며 2대에 걸쳐 진사 벼슬을 지낸 선현의 얼이 있는 고장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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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복 정경세(1963∼1642, 명종 18∼인종 20) 선생의 6대손인 입제 정종노(1738∼1816)의 아우 되는 재노(1755년 출생)가 15세 때 주거용으로 1779년(영조 46)에 건축하였으나 현재는 사랑채만 그대로 남아 있으며 안채는 80세 전에 개축하고 별채(현 병천정현판이 있는 집)는 70세 전에 건축한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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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은 자연석 기단과 주초(柱礎)에 각주(角柱)를 사용하고 벽체를 흙으로 발라 처리하였다. 대청은 우물마루를 놓고 상부가구(上部架構)는 오량가(五樑架)로 동자주(童子柱)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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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입구에는 보통 장승이 세워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우산마을에도 장승이 세워져 있다. 우산마을의 장승은 조선후기 새로운 장승문화에서 비롯되었으며 16~17세기에는 임진, 병자 양란을 거치면서 관광중심의 공동체 문화재로서 부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상주는 임진왜란때 타격이 가장 많이 받은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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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동천을 바라보는 곳에 우산공원이 조성이 되어 있다. 우산공원비에 새겨진 숫자로 보아 2019년 5월에 조성이 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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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동천을 건너가면 나오는 우복종가가 나온다. 우복종가는 조선 16대 임금 인조시대에 이조판서와 대제학을 지낸 우복 정경세 대감이 벼슬을 물러난 후 거처하였던 곳으로 옆 건물에는 대산루 사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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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선택할 자유가 있지만, 동시에 그 선택은 세상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석한 지식의 한계 안에서 얽매일 수밖에 없다. 이곳에 자리하였을 사벌국은 삼국시대 초기에 독자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3세기 중후반 사벌국이 진한의 맹주국인 사로국의 정치적 간섭에 반발하여 인근 백제와 결속을 도모하다가 법흥왕대 사벌국의 옛 지역에 상주를 설치하며 군정과 행정을 담당한 군주를 파견하면서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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