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인 노령화에 대한 대책은?
진보를 지향하던 보수를 지향하든 간에 출산대책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대부분의 출산대책은 아이를 키우는데 얼마를 보조해주던가 아이가 태어나면 돈을 주는 방식이다. 사회에 필요한 노동력을 생산하는 데 있어서 보조를 해줄 테니 출산을 하라는 것이 지금 출산장려지원금의 본질이다. 사람이라면 살아야 될 이유가 있다. 아이를 키우는데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게끔 만드는 사회구조도 문제이지만 아이를 키우고 난 다음에 정작 자신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무도 살펴주지 않는다.
아이를 키웠다치자 그 후에 오랜 시간 자신의 삶은 어떻게 유지해야 할까. 운 좋게 정년까지 근무했다고 하더라도 아주 오랜 시간을 살아야 한다. 자식들도 자신의 삶을 챙기기에 바빠서 옛날처럼 부모를 책임져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노령화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우선 노동력이 있는 건강한 사람들은 사회로 복귀하는데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하는데 일괄적으로 나이로 끊어내고 복귀가 힘들게 만든다.
게다가 노동력이 받침이 안되면서 건강하지도 못한 노령층은 분리정책을 실시한다. 즉 노인요양원이라는 곳으로 보내서 사회와 격리시켜버린다. 노인요양원 같은 곳은 노인을 사회로 복귀시킬 생각이 전혀 없다. 한 명당 국가지원이 있기 때문에 환자수를 유지하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이다. 예산은 엄청나게 들어가는데 그 과정은 효율적이지도 않고 결과도 바람직하지 않다.
아이들은 커서 노동력이 되기에 부모들은 키우는데 집중해야 하고 노령층은 사회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으니 격리시키고 한 명당 돈을 지급해서 격리하는 방식이다. 전혀 인간적이지 않다. 취지는 그렇지 않았더라도 그 예산을 유용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극대화로 활용이 되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셈이다. 노령화에 대한 대책은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들어주고 예산을 지원해주는 것이 더 적합해 보인다. 노인은 잠재적 질병의 보더라인에 서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면 적합한 정책을 세우기가 힘들다.
지금 국가의 노령화에 대한 대책을 보면 젊었을 때는 사회의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열심히 일하고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은 키우는데 돈이 드니 그걸 보조해주고 나이가 들어서는 사회에 도움이 안 되니 격리되어서 살라고 말하는 것이다. 최근 정치인들의 행보를 보면 소림사 정치가 아닌가 생각되는 것처럼 만들고 있다. 머리를 깎고 무술을 배우기 위해 산으로 갈 것처럼 보인다.
여론조사도 대체 누굴 대상으로 하는지도 모를 만큼 왜곡되어 있다고 보인다.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미래를 본질적으로 생각하며 국가예산을 잘 생각할 정치는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