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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19. 2019

주포면 (周浦面)

보령의 읍치였었던 공간

지금은 읍치라고 하면 생소한 단어처럼 느껴지지만 읍치란 원래 조선시대에 중심이 되던 지역이라고 생각하면 되다. 지방통치의 중심지로 고을의 치소(治所)가 있는 곳이 읍치다. 즉 흔히 말하는 시내라고 하는 곳이 읍치라고 볼 수 있다. 보령 성곽과 보령 관아문이 자리한 주포면은 오래전에 보령의 읍치였던 곳이다. 지금의 보령시내는 이곳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주포면을 한눈에 내려다보기 위해서는 주포면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보령정을 가면 된다. 보령정에서는 주포면의 전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참고로 주포면은 보령에서 일어난 일제강점기 만세 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보령에서 보령정이라고 쓰인 현판을 달고 있는 곳은 두 곳으로 알고 있다. 주포면을 내려다볼 수 있는 이곳에 세워져 있는 정자도 보령정이지만 국궁을 쏘는 공간을 의미하는 보령정도 같은 한자를 사용한다.  

보령정의 현판은 주포면장을 지낸 김청룡 씨가 썼다고 한다. 보령정이 자리한 진당산은 보령현의 진산으로 당집이 있어서 당제를 지내는 곳이다. 

보령정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와 우측의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주포면 학생야영장이 있는데 지금은 활성화가 안되어 있어 그냥 둘러볼 수만 있다.  야영장 시설을 정상화해서 보령을 대표하는 여행지로 활용하면 좋을만한 곳이다.  

봉당천이 흐르는 중앙부에 평야가 있는 보령시 중북부에 있는 주포면은 보령 관아문과 보령리 오층석탑, 보령성곽, 보령향교까지 있는 보령의 여행지중 하나다. 이곳은 장한성과 홍성과 보령을 연결하는 도로가 면의 중앙부를 지나간다.  

학생야영장을 보고 내려 오면 보령향교가 나온다. 남포 향교와 같이 보령을 대표하는 향교 중 한 곳이다.  

예스러운 장면들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주포면이 읍치였으니 이곳에서도 장이 열렸을 것이다. 읍치가 있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 보통 장이 열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비교적 최근에 보령관아문의 보수가 이루어진 모양이다. 전체적으로 기둥부터 위에 서까래 등이 모두 새것으로 교차가 되어 있었다. 보령 성곽은 고려 말에 이미 있었던 봉당성에 이미 있던 성을 보강하여 쌓아 만든 것이다. 보령성곽의 규모는 둘레 630m에 달하고 높이는 3.5m에 이른다.   

사람의 수명은 유한하기에 보통 대를 이어 무언가를 만들어간다.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요즘에는 그런 가풍도 많이는 없는 듯하다. 

사람에게는 고집이 있다. 세상의 모종의 논리를 품고 있어야 하고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그래서 공간을 지역으로 나누고 시간을 날짜로 나누며 성벽의 돌들처럼 내용물에 일관성과 의미를 부여하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위치와 연대를 파악하고 나면 사건과 사건의 주인공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은 그렇게 순조롭게 생각한 것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2019년 가을 주포면의 시간은 어떻게 기억이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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