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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20. 2019

돌의 고장

보령시 웅천읍의 순례길 

보령의 대표적인 항은 보령항이나 위쪽으로 올라가면 나오는 오천항이다. 과거에는 배를 댈 수 있는 곳에는 포구가 만들어졌는데 그중에 웅천읍에 있는 완장 포구도 한 곳이었다. 갈매못이라는 유서 깊은 성지가 있는 보령시에는 도보순례길이 만들어져 있다. 완장 포구와 서짓골 성지를 이어주는 도보순례길은 갈매못에서 세상을 떠난 네 명의 유해를 들고 걸어간 길이다. 12일 동안 갈매못에서 웅천의 내륙 포구까지 완 장포에 이르기까지 바닷길을 건너고 서짓골까지 옮겼는데 이후 발각되어 교우들도 한양으로 압송되어 세상을 떠나게 된다. 

완장 포구(완장교)에서 시작되는 순례길은 웅천읍 소방대, 한내 노인회관, 성동 1리 마을회관, 배챙이 못, 화산교, 서짓골 성지로 이어진다.  

이곳은 차량산맥의 지맥이 이어진 곳이서 잔구성 산지가 솟아 있으며 행정구역으로는 보령군 웅천면이었다. 1995년 보령군과 대천시가 통합되면서 읍으로 승격되게 된다. 웅천읍에서는 1,000년이 지나도 변치 않아 왕릉과 대통령 비석으로 사용되던 남포 오석이 나온다고 한다.  

보령이 돌로 오석이라는 돌로 유명한 곳이다. 한국의 석재산업 중심지라고 불릴 만큼 많은 돌이 생산되고 다듬어지고 있었다. 웅천에 가면 모든 산업의 중심에 돌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돌이 이곳저곳에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웅천읍을 위해 일었던 사람들의 공적비가 다리를 건너가는 부근에 세워져 있다.  

농구장과 테니스장, 축구장 등이 조성된 웅천 체육공원은 웅천읍에서 천변으로 위쪽으로 조성이 되어 있다.  

조선은 1905년 을사조약으로 결국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게 된다. 1년 뒤인 1906년 민종식은 부여군 내산면 지티에서 의병을 일으키는데 이때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 출신인 최상집 의사의 나이가 58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의병을 모집하는 소모장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무기 등의 열세로 인해 홍주성이 무너지면서 최상집 의사를 비롯한 유준근, 이식, 신보균, 문석환, 남규진 등과 함께 대마도 유배형을 받고 끌려갔지만 협박과 회유에 굴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이들을 가리켜 홍주의병 대마도 9 의사라고 부르게 된다. 최상집 의사는 3년 만인 1908년 10월에 석방되어 한국땅을 밟았으나 의병운동의 후유증으로 병이 들어 이듬해인 1909년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역사가 계속되는 사이 우리는 각 개인이 전체 인류의 일부라고 자랑스럽게 선언하기를 수없이 반복해 왔다.  웅천읍의 웅천(熊川)은 오래전 공주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  온조가 충남에 세력권을 확실하게 잡고 있을 때 북으로는 패하(浿河: 대동강)로부터 남으로는 웅천(熊川: 공주)에 이르기까지를 백제의 땅으로 획정해 달라고 요구하여 마침내 허락을 얻고, 그 후에 웅천에 가서 마한과 백제의 국경에 성책을 쌓았다. 지금은 공주라고 불리고 있는 보령의 이웃 도시의 옛 이름이 웅천읍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연관성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라고 추측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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