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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23. 2019

들말두레농요

대전 을미기공원

안성에 가면 이 땅에서 유명한 여사당 바우덕이를 만날 수 있다. 농요나 농악을 관심이 없다면 바우덕이가 익숙하지 않지만 그녀가 살아있을 때 뭇남자들은 바우덕이를 한번 만나는 게 소원이었다고 할 정도로 미색이 아름답고 소고에 능했다고 한다. 고장마다 그런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지금 신탄진 공단이 있는 곳이 논과 물이 넘치던 곳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부근에서 오래 살았던 분들만 그때를 기억한다. 

논이 있는 곳에는 농악이 있고 농요가 전해진다. 기술이 발달한 지금도 얼마 전 태풍이 지나가면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듯이 과거에는 더 심했다. 특히 홍수를 막기 위해 토산을 쌓고 두레를 조직해 김매기를 하던 데서 유래한 지역만의 민요와 놀이는 유서가 깊다. 

대덕구 신탄진에는 들말두레 전수회관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목상동은 금강과 갑천이 만나는 지점으로 땅이 넓고 기름져 농사일이 번성하여 농요가 많이 불리어졌다. 지금의 풍경과 전혀 다른 풍광이 이 부근에서 있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농사를 하기 위한 노동력이 소나 사람의 손에만 의지하던 그때는 두레 조직을 만들어서 공동작업을 했다. 자연스럽게 고단함을 잊기 위한 노동요가 생겨났던 것이다. 

들말 농요가 전해지는 전수관 옆으로는 을미기공원이라는 공원이 조성이 되어 있다. 신탄진이란 이름은 읍지나 고지도를 살피면 회덕현 북면(또는 서원 북면)과 문의현(현재의 현도면 양지리)을 잇는 나루로 기록되어있다고 한다. 

3, 4 공단이 있는 문평동 일대는 대청댐이 건설되기 이전에는 상습 침수지역이었다. 예전에는 그지역에 을미기 공원이라고 있고 현도교 아래에는 지금 유명한 관광지처럼 사람들이 많이 찾기도 했지만 대청댐이 건설되면서 모래 퇴적이 중단되었다.  

을미기공원에는 축구장을 비롯하여 테니스장과 게이트볼장 등을 갖추고 있다. 시민들을 위한 체육교실도 운영하고 있으니 대덕구 체육회에 문의를 하면 된다. 축구는 주로 조기축구회가 주축이고 생활체육 테니스교실, 게이트볼 교실은 대덕구 체육회를 중심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도시 속 생활체육공원은 이제 필수적인 공간이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으로 필수적인 도시공간이기도 하다. 이 부근에서 전래되었을 들말 농요를 3대째 전수해 온 고석근 등을 중심으로 재현되었다. 지금은 목상동 들말두레소리보존회가 있어서 들말두레를 계승하고 있다고 한다.  

을미기공원의 상징물은 달과 시간이 아닐까. 달은 우리가 농사를 짓는 데 있어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들말두레놀이의 방법은 풍년을 기원하여 토산에 기를 꽂고 토산제를 지낸 후에, 두레패는 풍장을 치며 공동우물에 가서 샘굿을 한다.

을미기공원과 들말두레농요는 연관성이 적지 않다. 이 근처로 물이 흘러서 여울이 졌는데 그 후 큰 장마로 인하여 옛날에 여울이 졌던 마을이라 여울목 또는 을란, 이후에 변경되어 을미기라고 하였다. 농사를 짓는 데 있어서 물은 꼭 필요하지만 물이 넘쳐서 흐르면 좋지 않으니 적당한 것을 바라면서 풍년을 기원하는 농요와 지역명이 같이 보조를 맞추면서 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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