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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13. 2019

읍성 생활

서산 해미읍성의 축제

읍성의 역사를 보면 대한민국의 역사보다 더 오랫동안 옛날 사람들은 읍성 생활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지금은 대도시의 도심이 중심 역할을 하지만 예전에는 읍성을 중심으로 생활하며 지역생활권이 조성이 되었을 것이다. 읍성의 경우 성벽을 쌓은 자연석은 거칠게 다듬어 굄돌을 넣는 방식으로 쌓았으나, 그 가운데는 초석(礎石), 당간지주(幢竿支柱) 같은 것을 깨뜨려 쓴 것도 있다. 

오래된 한국의 산성이나 읍성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방어기지이자 생활의 공간으로 활용되었기에 토성으로 쌓은 후 조선시대에 이르러 석축으로 쌓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공성전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은 장점을 가지게 된다. 

서산에서 열리는 축제 중 대표축제는 해미면에 자리한 해미읍성에서 열리는 해미읍성 축제다.  해미읍성은 조선 성종 22년, 1491년에 완성한 석성이다. 둘레는 약 1.8km, 높이 5m, 총면적 196,381m²(6만여 평)의 거대한 성으로 동, 남, 서의 세 문루가 있다. 

서산의 해미읍성 축제 중에 인기 있는 체험 프로그램은 바로 국궁이다. 원래 국궁의 거리보다는 짧은 거리이지만 비교적 활시위가 당기기 쉬워서 자신의 국궁 재능을 테스트해볼 수 있다.  


말이 작은 편이어서 아이들을 위한 체험으로 활용이 되었다. 말에 아이를 태우고 해미읍성의 내부를 한 바퀴 돌아보는 코스다.  

보통 읍성의 주변으로는 해자를 파놓고 방어에 유리하도록 하는데 해미읍성은 해자를 파지 않고 주변에 탱자나무를 심어서 방어하였다. 지금 탱자나무는 찾아볼 수가 없다.  탱자나무의 가장 비극적인 쓰임은 위리안치(圍籬安置)였다. 이는 옛날 죄인을 귀양 보내 주거지를 제한하는 형벌로서 집 주위에 탱자나무를 빙 둘러 심어 바깥출입을 못하게 한 것을 말한다. 

옛날에는 성을 쌓고 주위에 ‘해자(垓字)’라 하여 둘러가면서 못을 파고 그도 모자라 성 밑에 탱자나무를 심었다.  특별한 장비를 갖추지 않으면 탱자나무 가시를 뚫고 성벽을 기어오르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성을 탱자성이란 뜻으로 ‘지성(枳城)’이라 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성은 충남 서산의 해미읍성인 것이다.  

특히, 1866년 박해 때에는 1천여 명이 이 곳에서 처형되었는데 천주교 박해 당시 관아가 있던 해미읍성으로 충청도 각 지역에서 수많은 신자가 잡혀와 고문받고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올해로 제18회를 맞이한 서산 해미읍성 축제는 조선 음식이라는 먹을거리에 대한 기억을 남기고 막을 내렸다.  해미읍성의 본래 이름은 해미내상성(內廂城)이며 충청도 병마도절제사영은 원래 덕산에 있었는데 해미가 새로운 병영지로 선택된 데에는 이 지역이 서해안에 접경한 것은 물론이고, 그 위치가 이산(伊山)·순성(蓴城)·남포(藍浦) 3진의 중간 지점으로서 군사적으로도 효율적이었기에 1652년(효종 3) 청주로 옮겨가기 전까지 약 230여 년간 군사권을 행사하는 거점이었던 곳이다.  


by. P.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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