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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09. 2019

사람의 등급

묵계서원(默溪書院)에서 오늘을 살다. 

사람의 등급을 따진다면 하루 종일 고요히 앉아 있다가 자신의 뜻과 생각을 분명하게 말하는 사람을 가장 최고로 칠만하다. 가장 빛나는 것들은 언제나 일상 속에 있다고 하는데 보통은 발견하는 것이 쉽지가 않을 뿐이다. 안에서만 갇혀 있다 보면 생각의 폭과 시야가 좁아진다. 아마 신의 경지에 오르지 않는 이상 이는 어느 누구에게나 대동소이하게 적용되는 법칙에 가까울 것이다.   

잠잠하고 조용한 느낌 산골짜기라는 이름의 묵계(默溪)를 사용하는 묵계서원은 정말 조용한 곳이다. 조용한 느낌만큼이나 사색할 시간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최고로 생각하고 나머지 일을 소흘히하는 경향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일들은 각자 재주와 능력에 따라 자신의 재능을 발전시키고 수행하는 한가한 틈을 이용하여 배우고 익혀야 한다. 

멋스러운 묵계서원은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한 번은 여름 때 왔었고 이번에는 가을이 무르익었을 때 찾아와 보았다. 이제 다음 주면 또 한차례 차가운 기운이 올 듯하다. 차가운 기운이 오기 전에 묵계서원을 와보아서 그런지 몰라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묵계서원의 안쪽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공간을 통해서 안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스스로 깨달아 터득한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 사람이 세상의 모든 이치에는 통달할 수 없다. 지식은 전혀 다른 분야처럼 보이는 선을 넘나들 때 그 파급효과가 상당히 커진다. 학문과 저술이 지극한 경지에 오른 사람들을 보면 역사가였으며 철학가였으며 문학가였으며 과학자였으며 예술가였다.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조선 후기 김계행과 옥고를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묵계서원은 김계행의 생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곳이다. 과거와 오늘, 내일을 이어가는 순간에 김계행의 생각의 일부를 받아서 이어가 보려고 한다.  

이곳에서도 다양한 인문학 교육과 옛사람의 유학을 잠시 공유하는 시간이 자주 있기에 다양한 물건들이 자리하고 있다.  묵계서원에 모셔진 김계행은 항상 청렴과 근신하는 태도를 지키며 매사에 신속하게 업무를 처리해 나가며 정사를 돌볼 때는 엄숙히 하고 백성을 돌볼 때는 자애로웠던 사람이다.  

묵계서원의 대청에서 앉아 있으니 잠시 이곳을 찾았던 사람들이 나가고 적막한 시간만 흐르고 있다. 세상에는 결코 속일 수 없는 이가 한 명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혼자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봐야 비로소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사악함은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 자라난다는 말이 있다. 

 68세에 풍산 사제(笥提)에 있는 집 곁에 서재를 짓고 ‘보백당(寶白堂)’이라는 편액을 걸었으며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으로 더 많이 알려진 송암(松巖)의 폭포 위에 만휴정(晩休亭)을 지어 만년에 은거하면서 자연을 벗삼았던 김계행의 가을은 어떠한 느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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