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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11. 2019

형제의 우의

영천댐에 내려오는 사람들의 이야기 

영천댐에는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 있다. 영천댐이 만들어지면서 수몰될 지역에 자리했던 고택을 한 지역에 다시 복구를 해둔 곳이 있다. 영천에 사시는 분들도 잘 알지 못한다고 하다. 입구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고택들이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천댐의 안쪽으로 올라가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1호인 강호정을 비롯하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3호인 하전재(부비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72호인 오 회 공 종택,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6호인 오회당,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4호인 사의당 등이 자리하고 있다. 

우선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정세아가 지었다는 강호정으로 들어가 본다. 강호정은 임란 이후에 고향에 돌아와 여러 교우와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다. 1974년 영천댐 공사로 수몰됨에 따라 현 위치로 이건 하였다고 한다. 

건물의 형태는 중앙칸과 전면 툇간은 누마루로 되어 있고 양래간은 방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영천댐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원래 있던 곳보다는 옮겨진 이곳이 경치가 더 좋을 듯하다.  

우리는 조선시대의 유교를 왜곡해서 이해하고 편견을 가지고 있지만 신념에 살며 강직했던 선비들이 더 많았다. 하천재는 진주목사였던 정호인이 창건하였는데 그는 강의공의 신도비를 수호하기 위해지었다고 한다. 

강의공은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어 많은 전공을 세웠지만 논공행상에 참여하지 않고 고향으로 내려와서 강호정사에서 학문을 닦아서 명망이 높은 선비였다고 한다.  

이 고택들이 있는 건너편에는 명망있는 가문의 묘들이 소나무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 자리한 고택 중에서 모두 의미가 있지만 가장 의미가 있는 고택은 사의당이었다. 형제와 자매간 우애가 좋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는 일이다. 사의당은 조선 영조 2년(1726)에 정중호, 중기, 중락, 중범 4형제의 우의를 돈독히 하고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건립한 것이라고 한다.  

사람은 내 사람에게 호의적인 것은 사실이다. 어떤 시기에는 같은 경험을 할 수도 있지만 따로 살면서 다른 경험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같은 가치와 중심을 가졌다면 언제든지 화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태어나서 자란 환경마다 다른 성향을 지니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정말로 소통이 되는 남녀가 되는 것이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사람이 사는(Buy) 집이 아니라 사는(Live) 집인 고택에는 가치 있는 사람 이야기가 있어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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