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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11. 2019

단풍과 잎

음성향교에서 느낀 가을의 온도

단풍이 들면 잎은 그 역할을 다할 때가 온 것이다. 머물러야 할 때와 나아가야 할 때를 아는 것은 누군가 명확하게 말해주지 않는다는데 함정이 있다. 기업 같은 곳에서 어려우면 퇴직을 권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나아감과 물러감은 그런 것과 결이 다르다.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자연의 나아감과 물러감의 법칙은 사람이 못 따라간다고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노란색의 단풍이 물들다 못해 잎이 떨어지고 있는 음성향교는 올해 조금 특이한 행사가 있었다. 

지금 음성향교는 전면적인 보수 중에 있었다. 이 정도 공사는 올해 끝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내년 초반까지 목공사부터 벽체 세우기까지 진행될 듯하다. 올해 음성향교 바로 옆에 세워져 있는 비중 친일파 이해용의 공덕비가 철거되었다.  

이해용은 을사오적중 한 명인 이완용과 6촌 관계로 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규명 보고서에 오른 친일파로 일제 강제병합이 된 다음 해인 1911년 바로 조선총독부 임시 토지 조사국 조사과 서기로 근무하다가 1918년 일제의 경찰로 활동하여 큰 공로를 세우기도 했다.  

주춧돌과 쓸만한 기둥 몇 개를 제외하고 전면적인 교체공사가 진행 중인 건물 옆에는 잎이 다 떨어진 은행나무 옆에 아직도 잎이 많이 매달려 있는 은행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지인과 함께한 여행에서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같은 공간에 심어져 있는 같은 수종의 나무라도 물들어가는 속도가 다른 것을 보면 신기하다면서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충청북도 시도 유형문화재 제104호로 지정된 음성향교가 건립된 것이 1555년(명종 10)이니 거의 5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금 일곽(5동), 대성전 9칸, 동재 8칸, 서재 4칸, 명륜당 2칸이 남아 있다. 건물의 목적은 사람이 살기 위한 공간으로 오래가도록 계속 고쳐 쓰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우리도 옛 건물처럼 오래가도록 잘 만들고 쓸모없는 비용을 줄여야 할 때다. 


붉은색 단풍도 음성향교의 건물에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사람과 자연 사이에도 서로를 알아주는 존재가 있다고 한다. 매월당 김시습은 매화와 달을 자신을 알아주는 벗으로 삼았다고 하며 다산 정약용은 차를 그런 존재로 보았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음성향교 속의 나무들은 항상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냥 그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할 뿐 과하거나 무리하지 않는다.  

아침에 잠이 아직 덜 깼을 때 다양한 생각이 떠오른다. 그중에 괜찮은 문구나 생각도 있다. 희한한 것은 그 시기를 놓치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분명히 무척이나 명확하다고 생각했는데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향교에서 배움에 담겨 있는 성리학적 세계관과 사유는 매우 명확한 편이다. 그 한계를 넘는 것은 때론 인간 고유의 상상력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날 때 행동하고 쓰는 것은 순간의 생각을 남기는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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