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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17. 2019

일본을 쏘다.

김제 아리랑 문학마을의 하얼빈 역

광복이 오고 나서도 한참의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일제강점기의 여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은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자금 등을 지원받거나 일본을 위해 일했던 사람들이 곳곳에서 비중 있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에 호기롭게 반민특위가 출범했지만 거의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유야무야 끝나고 말았다.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단죄할 수 있는 기회를 영영 놓쳐버리고 말았다. 

한국에서 드 넓은 평야가 끝없이 펼쳐진 곳을 만나기란 쉽지가 않다. 전라북도 김제는 지평선을 볼 수 있는 지역이 있을 정도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곡창지대가 있는 곳이다. 때문에 일제강점기 때 많은 수탈을 겪은 곳이기도 하다.  

김제의 아리랑 문학마을에 가면 일제강점기를 잊지 않기 위해 다양한 공간이 재현이 되어 있는데 중국까지 가지 않아도 만나볼 수 있는 하얼빈 역이 있다. 하얼빈 역은 안중근 의사가 일본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곳이기도 하다.  

하얼빈 역은 중화인민공화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난강구의 철도역이다. 징하선(京哈线), 하다선(哈大线), 빈쑤이선(浜綏线), 빈저우선(浜洲线), 빈베이선(浜北线), 라빈선(拉浜线)이 지난다고 한다. 중국은 여러 번 가보았지만 하얼빈 역을 가본 적은 없다. 현실감이 있게 조성해둔 덕분에 잠시지만 마치 그곳에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 곳이다. 

하얼빈역에는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사건으로 유명하며, 기념관이 설치되어 있다.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한 후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한반도에 대한 독점적인 권한을 넘겨받게 된다. 

1909년 일본 정부는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당시 정세를 이용하여, 일본의 조선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는 러시아의 코콥초프 총리를 만나 한반도와 중국 둥베이 지방의 일본과 러시아 영향권 구분을 의논하기 위해 하얼빈으로 가게 된다.  

이곳도 논산의 선샤인 스튜디오처럼 내부 직원을 두고 운영을 하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었다. 

기차가 들어오고 안중근은 앞으로 나가 이토 히로부미 앞에서 권총을 꺼내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세 발을 발사했다. 총알 세 발이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과 복부에 맞춰졌고, 이토 히로부미와 동반한 의사가 재빨리 이토 히로부미를 차에 태워 응급 처치를 하였는데, 20분 후, 이토 히로부미가 사망하였음을 알렸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일이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찍부터 유학까지 한 귀족 가문이며 일본의 엘리트 계층을 대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승승장구하는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것만으로 한국은 독립의 불씨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중국은 안중근 의사 기념관뿐만이 아니라 이밖에도 하얼빈 역 승강장에 "安重根擊斃伊藤博文事件發生地,1909.10.26.(안중근 이토 히로부미 사살 사건 발생지, 1909.10.26)"이라는 문구를 새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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