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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19. 2019

윤증의 제자

논산 백일헌 이삼 장군 고택의 가을

논산의 인물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김장생이나 윤증의 영향을 받았을까. 지역에 좋은 스승이 있다는 것은 매우 좋다. 안동에 퇴계 이황과 서애 류성룡이 있었듯이 논산에도 돈암서원의 김장생이나 윤증고택의 윤증이 있었다. 노론과 소론의 분립 과정에서 소론의 영수였던 윤증은 논산의 많은 유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중에  영조 3년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영조에게 하사 받은 가옥이 남아 있는 이삼 장군이 있다. 주곡리 마을 진입로에서 마을 진입로를 따라 500여 미터쯤 가면 고택에 이르게 된다. 

이삼장군고택의 입구에는 황금색을 뽐내며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다. 얼마나 많은 열매가 떨어지는지 온 마당에 은행이 가득가득하다. 입구로 걸어서 들어가 본다. 오래간만에 찾은 논산 이삼 장군 고택이다.  이삼 장군은 지략과 체력, 무술을 같이 가지고 있었던 인물로 1677년 조선시대 충청도 노성현(현 논산 상월면 주곡리)에서 태어난 함평이씨(咸平李氏) 가문에서 태어나게 된다. 

이삼 장군은 명재 윤증에게 교육을 받고 윤증에 의해 문무를 익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후 1703년 26세 때에는 별시에 장원급제(壯元及第)하며 선전관(宣傳官)으로 출사 하게 된다. 윤증에게 사사하였듯이  정치적으로 이삼 장군은 소론의 중심에 있었는데 그다지 당색을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공격을 노론은 적지 않게 감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후손이 살고 있기에 입구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는 곳만 돌아보는 것이 예의다. 이삼 장군 고택은 ㄱ자형 사랑채와 ㄷ자형 안채가 위치하여 있고 전체적으로 바라보면 ㅁ자형의 배치 형태를 띠고 있다. 솟을대문을 지나면 바로 사랑채가 보인다.  

얼마 전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었는데 집에 심어놓은 감나무에서 감이 많이 열렸다면서 가지러 오라는 것이었다. 이삼 장군 고택에도 많은 감이 매달려 있다. 약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한 번의 실천으로 되는 일은 없는데 꾸준히 실천해 쌓였을 때에야 비로소 이전과 뚜렷이 달라진 바가 있을 것이다.  

이삼 장군은 이인좌의 난을 제압할 때 영조에게 제안했던 것이 북방의 군사를 끌어내리면 민심이 흉흉해지니 충청, 호남지역에서 일어난 이인좌의 세력을 제외하고 남쪽에서 군사를 일으켜 난을 제압했다고 한다.

이삼 장군 고택은 잘 관리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안에서 돌아다니다가 보면 평안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널찍한 뒷마당과 안채, 널찍한 누마루 등은 가을 정감을 느껴볼 수 있다.  몸가짐을 삼가 삿됨을 예방하는 것은 담을 쌓는 일과 같다고 한다. 삿됨을 막는 것으로 나의 마음을 지켜야 한다고 한다. 정감 있는 차 테이블을 앞에 두고 대담해봐도 좋은 날이다. 


"말은 늘 미덥게 하고 행동은 늘 신중히 하여 삿됨을 막고 진정성을 지켜라." -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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