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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28. 2019

비 오는 날

화성의 융건릉

화성의 융건릉은 한겨울에 와보고 나서 이번이 두 번째다. 지인과 함께 화성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겨울을 부르는 비가 내리는 융건릉을 찾아가 보았다. 아직 가을이 모두 가지는 않았지만 쌀쌀한 것이 바로 겨울이 코앞에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이란 가을 서리 같은 단호함만으로도 안되며 봄날 햇볕 같은 따뜻함만으로도 안된다고 한다. 두 가지를 함께 지니고 있기 위해 걷는다.

비가 내려서 사진을 찍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지인이 우산을 들어주며 끝까지 같이 해준 덕분에 용이하게 사진을 찍으며 돌아볼 수 있었다. 

누군가와 다시 찾아와 보니 절로 말이 이어진다. 노론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 영조의 보호 아래 왕이 될 수 있었던 정조는 왕에 오르자마자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공표한다. 그리고 사도세자 혹은 장현 세자라고 칭했던 아버지를 장조에 추존하고 어머니인 혜경궁 홍 씨와 함께 융릉을 만들어 아버지의 복위에 노력을 기울였다. 

비가 제법 많이 내리고 있었는데 낙엽이 마치 비 내리는 듯이 이곳저곳에서 흩뿌려지고 있었다. 

우선 정조와 왕비가 있는 건릉으로 먼저 걸어가 보았다. 조선왕조의 왕들의 묘는 혼자 모셔진 릉과 합장릉으로 구분이 된다.

정조는 백성을 생각하고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전혀 다른 존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 지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의 차별의식이다.  ‘모든 냇물에 골고루 비추는 밝은 달과 같은 주인 늙은이’라는 의미의  만천 명월 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 정조의 서재에 걸려 있었다. 정조는 죄수들이 감옥에 있을 때에는 결박을 하지 못하게 했으며 형틀을 씌우지 말도록 했다. 

정조는 서자 출신의 박제가를 늘 곁에 두었고 소외당하던 서북 출신의 이응거를 등용하였으며 다산 정약용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도록 도와주었다.  

다시 사도세자를 만나기 위해 옆으로 이동해서 걸어보았다. 

융릉은 조선 제22대 정조의 아버지인 장조(1735~1762)와 그의 비인 헌경왕후(獻敬王后)(1735~1815) 홍 씨가 묻힌 곳이며 건릉은 정조(1776-1800 : 재위, 1752-1800)와 효의왕후(1753-1821) 김 씨가 묻힌 곳이다.

융릉은 누가 보아도 능 조영에 정성을 들인 정조의 효심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곳이다.  

정조 재위 기간에는 정조의 학문적 소양에 터전한 적극적인 문화 정책의 추진과 선진문화인 중국의 건륭 문화의 영향 등으로 문화적인 황금시대를 이루어 조선후기 문예부흥기를 이루었지만 사후에 조선은 그 흐름을 이어가지 못하였다. 

이날 마지막 여정에서 이곳에 와서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정 세상을 바꾸려고 고심한다면 마땅히 세상의 반도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세상의 반도가 되어 다른 세상을 만나고, 다시 그 새로운 세상의 반도가 되어 또 다른 세상을 만나는 것이다. 

검색해서 찾은 화성의 맛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하루의 고단함을 풀어본다.  사도세자가 영조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까지의 정황은 다소 복잡하다. 노론 측에서는 줄기차게 사도세자의 흠을 들추면서 이간질했고, 이들 배경에는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숙의 문 씨 등이 있었다. 비 오는 날에 야외를 돌아다니는 것이 조금은 불편했지만 함께하는 이가 있었기에 불편이 오히려 추억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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