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군을 걸으며 느끼는 것들
권력은 지우려 했고, 세상은 간직하려고 했던 대표적인 사람으로 이순신이 있다. 벼슬길에 올랐던 사람이 백의종군하는 일은 큰 시련이겠지만 새로운 깨달음을 얻거나 자신을 다스리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고 적은 군사로 왜군을 막아내며 빛내었다. 답답한 일상에서 지쳐가면서 무엇인가 결핍되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때론 그냥 걸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걷기 전에 두툼한 돼지고기를 하는 음식점에 가서 배를 채우고 출발을 한다. 이 집은 더덕과 잘 삭은 김치를 주는데 숯불에 올려서 먹는 맛이 참 그만이다. 당시 이순신은 잘 먹고 다녔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하동에도 자리한 백의종군로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파직 후 백의종군할 것을 명 받고 초계(경남 합천)의 도원수부를 찾아가는 여정을 복원한 길로써 해군사관학교 역사기록 관리단과 순천향대학교 이순신 연구소의 고증에 의해 전국 총 640km 구간 구간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상당히 긴 구간을 걸어서 돌아간 것이다.
하동의 횡천면은 자주 가는 곳이기에 이제는 무척이나 익숙해 보이는 곳이다.
백의종군로의 중간중간마다 내년을 기약하며 화단을 조성하는 곳도 눈에 뜨인다. 백의종군은 아까운 장수를 참형으로 다스려 전투력을 상실하는 것보다는 전쟁터에 나가 공을 세우도록 해 복권케 하는 징벌의 일종이다.
선조에게 이순신은 계륵이었을까. 이순신은 생애에 두 번의 긴 백의종군을 하게 된다. 두 번째는 수군통제사 원균과 관련된 정유재란 때인 1597년의 일이다. 10년 만에 두 번째 백의종군하게 된다.
선조는 "두 장수는 우선 합심하고, 이순신은 전장에서 그 죄를 씻도록 하라"라고 백의종군을 명한다.
정처 없이 가다 보니 산청군과 경계에 있는 하동군 다목적 캠핑장이 나왔다. 이순신에게 두 번의 백의종군의 기회가 없었다면 12척의 배로 조선을 지켰던 명량해전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권율 장군의 원수부로 가기 위해 5월 26일 구례를 떠나 석주관을 지나 악양, 하동, 옥종 등을 거쳐 원수부로 들어갔으며 이곳에서도 정보 수집 등의 군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정보를 수집하여 왜군의 동태도 살폈다.
하동군 다목적 캠핑장의 앞을 흐르는 물은 덕천강이었다. 이순신은 자신에게 닥친 일을 불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주저앉지는 않았다. 안 좋은 일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기회로 바뀐다. 나쁜 일은 본인이 그렇게 규정하면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백의종군 중이던 이순신에게 손인필, 이원춘, 정사준 등의 배려는 재기의 희망이 되어 주었다.
하동을 이어주는 백의종군로는 전쟁 극복을 위한 확실한 신념을 다지게 하였다. 원균이 이끌고 나간 조선수군이 전멸하다시피 한 칠천량 해전의 패배 이후 그에게는 조선의 수군도, 판옥선도, 각종 총포도 없었지만 그를 따르는 군관들과 거리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와 같은 백성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