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색의 풍광

이현동 거대억새 습지

지금까지 걸작으로 남아 있는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만든 HBO 드라마의 밴드 오브 브라더스(Band of Brothers)에서 정예 공수부대원이지만 전쟁의 참상 속에 살아남은 군인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에게 인터뷰를 한 제작자가 질문을 했는데 치열한 전투에서 어떻게 버텼냐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무척이나 두려웠지만 같이 함께한 전우가 너무나 훌륭했기에 버틸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걸 하나의 단어로 말하면 신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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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다. 남녀 간의 관계를 그린 사랑계가 있다면 중심에 태양같이 빛을 내는 항성 신뢰가 있고 신뢰를 중심으로 중성, 이성, 남성, 여성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처음에는 신뢰의 중력이 약해서 관계가 희미할 만큼 멀리 타원형 궤도를 그리며 공전한다. 아무런 관계가 형성이 되지 않은 중성적인 관계에서 이성, 남성, 여성으로 이어지면서 신뢰의 표면 중력을 통해 중심으로 천천히 끌어당겨지는 관계가 사랑계가 아닐까. 신뢰가 없다면 결국 저 멀리 날아가 버릴 것이고 너무나 급작스럽게 중심으로 끌어당겨지면 서로 부딪쳐서 날아가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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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구의 끝자락에는 이현동이라는 동네가 있다. 이현동을 넘어서면 동구로 들어서게 된다. 이현동은 대덕구 북동쪽에 위치하여 뒷산 모양이 둥글넓적한 배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배산이라고 부른 곳이다. 배고개라는 이름을 그대로 따서 이현이라고 부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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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하고 나서 나란히 그림자를 보면서 이현동의 생태습지를 걸었다. 그림자는 해의 위치에 따라서 때론 먼저 걸어가기도 하고 때론 뒤에서 따라오기도 한다. 남녀의 관계란 그런 것이 아닐까. 때론 먼저 가서 끌어주기도 하고 어떨 때는 뒤에서 밀어주기도 하는 그런 관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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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동에 이렇게 거대한 억새습지가 있는 것을 왜 몰랐을까. 오랫동안 대전의 구석구석을 돌아봤는데도 불구하고 이현동 거대억새 습지는 처음 와보는 곳이다. 오색빛 호박마을은 이현동에 둥지를 틀고 있는 대청호 오백리길 두메마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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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색 물결이 흘러넘치는 공간이다. 이곳은 호박이 콘셉트로 조성된 마을이기도 하기에 서양에서 유명한 핼러윈 축제 때 떠들썩하다고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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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건너편에는 계족산성의 자성(子城) 구실을 하였던 것으로 여겨지며, 성벽은 판상(板狀)의 납작한 할석으로 안쪽으로 물려가며 축조한 이현동 산성이 자리하고 있다. 두 봉우리를 에워싸고 있어서 말안장 모양의 테뫼식(산 정상을 둘러쌓은 성) 산성을 이룬다. 남쪽의 배치 고개의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과 성 이름을 삼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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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동 생태습지가 이곳에서 조성되면서 물억새를 비롯하여 수련, 노랑꽃창포, 삼백초, 어성초, 꽃창포, 애기부들등이 식재되었다. 주변을 돌아보면 3.2km이니 넉넉하게 걸어도 한 시간이 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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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데이에는 `잭-오-랜턴(Jack O`Lantern)`이라 불리는 호박 등이 등장하는데 속을 파낸 큰 호박에 도깨비의 얼굴을 새기고, 안에 초를 넣어 도깨비눈처럼 번쩍이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 장식품이다. 조형물 옆에 자리한 호박의 형태가 마치 잭-오-랜턴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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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 데이에는 죽은 자들의 영혼, 유령, 마녀, 도깨비 등이 정처 없이 배회할 것으로 여겨 결혼·행운·건강·죽음에 관계되는 점치기에 가장 좋은 시기로 생각했는데 망령의 갈 길을 밝혀주기 위한 등(燈)이란 이름에서 유래된 호박 등이다. 황금색의 풍광이 이끌어주는 대로 걷다 보면 망령의 길을 밝혀주는 호박 등처럼 다음의 길이 명확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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