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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12. 2019

마지막 가야

옛 고령가야의 흔적

가야의 설화처럼 김해에서 김수로왕과 함께 태어난 6명이 6개의 가야를 건국하였다면 상주는 가장 나중에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김해에서 가장 먼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가야가 건국할 당시 마한의 소국이었던 백제와 진한의 땅에 신라가 자리 잡아가고 있었고 위에는 고구려가 건국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다가 상주까지 오게 되었을까. 

이날의 마지막 일정은 바로 상주 함창에 자리한 전 고령가야왕릉이었다. 이곳 고령가야(古寧伽倻)의 고령은 경상북도의  고령(高靈) 지방의 이름과 다르다. 얼핏 한글로만 보면 경상북도 고령의 대가야가 잠시 이곳에 자리했다가 마치 고령으로 간 것처럼 생각될 수 있다. 6가야 중 가장 알려진 것이 없는 고령가야의 태조가 바로 이곳에 잠들어 있다. 

고령가야가 있었다는 옛 함창군(현재의 상주시 함창읍, 공검면, 이안면) 지역은 원래부터 신라의 영역(진한의 사벌국 지역)에 속했다고 한다.  문경과 접경구역에 자리한 이곳에서는 고령가야(古寧伽倻)가 있었다는 상주시 일대에서는 가야와 관련된 유물이나 유적이 나온 적이 없고 문헌상으로도 고령가야가 실제로 가야 시대에 함창에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 

다행히도 고령가야를 115년에 세운 고로왕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로왕 이후에 마종왕, 아현왕으로 대를 이어가며 국가가 존속하였지만 이제는 그 흔적만을 남기고 있다.  

가끔 이런 역사의 공간을 보면 그 시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광속에 도달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속도를 나타내는 v/c가 1이 되는 그 순간에는 무한대의 에너지를 쏟아붓고 무한대의 긴 시간 동안 가속을 한다면 광속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무한대라는 것은 우주 전체의 에너지를 합한 것보다도 큰 것이므로 해답은 되지 못할 것이다. 

가장 알려진 것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고령가야의 태조 왕릉을 소박한 편이다. 조선시대 정승의 묘보다도 작은 느낌이 들지만 그래서 더 신비한 느낌이 드는 공간이다.   1592년(선조 25)에 능 밑 층계 앞에 묻혀있는 묘비가 발견되었는데 발견된 음각으로 된 글씨로  ‘古寧國太祖伽倻王陵(고령국태조가야왕릉)’ 관찰사 김수와 함창현감 이국필 등에 의해 확인 된 전고령가야왕릉의 앞에는 1712년(숙종 28) 왕명에 의하여 묘비와 석물을 건립하였다.

개국 초에 지금의 문경, 호계, 가은을 영현으로 이안천과 영강 변의 기름진 터를 잡고 내려오다가 풍요하고 평화로운 태평성대가 계속되다가 나라를 세운 지 16세 520년(진흥왕 23년)에 신라에 병합되었다 한다.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회천리에 자리한 전 고령가야왕릉은 경상북도 기념물 제26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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