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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28. 2019

최초 거북선 길

사천 모충공원과 바다

인간의 관점으로 보면 사람의 죽음은 비극적이고 안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모든 유기체에는 내부에 시간이 도입이 된다.  개체는 끝이 정해진 소멸에 이르는데 죽음은 원자들을 재활용될 수 있게 한다. 즉 죽음 덕분에 동물의 생명은 재생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 사람의 죽음이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런 걸 운명이라고 부르는지 모르지만 노화에 의한 죽음으로 통해 필요한 무기염을 순환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쟁 등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죽음을 줄게 하기도 한다. 

전국에 이순신의 이름이나 행적을 따라 만든 길만큼이나 많은 길이 있을까. 사천에도 축동면과 정동면, 용현면, 서포면을 아우르는 길이 있는데 1코스 사천 희망길, 2코스 최초 거북선 길, 3코스 토끼와 거북이길, 4코스 실안노을길, 5코스 삼천포 코끼리 길이다.  이중에 이순신과 관련된 길은 2코스다. 2코스의 중간지점에는 모충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사천 모충공원으로는 두 번째로 올라가 보는 길이다. 사천의 바다를 보면서 걸어볼 수 있는 전환점에 자리한 공원이다.  

모충공원의 앞바다의 사천해전은 원균과 이순신 함대가 합류하여 왜군과 전투를 하였는데 이때 거북선이 처음으로 투입이 된다. 그래서 거북선 길이라고 명명되어 있다. 최전방 돌격선으로서 명성을 얻으며 거북선은 사자 총통과 각종 화포를 활용하여 왜군 함대를 수장시킨다.  

사천 모충공원은 사천해전과 연고가 깊은 곳이어서 충무공 이순신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추모의 기념비를 한국전쟁 중인 1952년에 세웠고 사천시는 시민의 추모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새롭게 단장하여 휴식공원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이순신의 상이 보인다. 이순신은 사천해전에서 승리를 했지만 왼쪽 어깨를 관통하는 총상을 입은 후 이곳 모자랑포에서 밤을 지냈다고 한다. 지금 사천 바다 케이블카를 통해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각산의 한 줄기가 돌출하여 강지바다로 내려오는 곳에 모자랑포가 있다.  

난중일기에 기록된 ‘사천 모자랑포’의 오늘날 지명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상태이다. 다만 사천 선창이 용현면 선진과 통양 사이 조금마을 부근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고 한다. 실안동 영복원 일대와 노룡동 모자랑 개, 용현 주문 등이 거론됐지만 고증의 한계로 결론을 내지는 못했다고 한다. 

아무렴 어떠하겠는가. 역사가 반복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생명을 이어가면서 기억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 사천의 최초 거북선 길은 모충공원을 지나 각산, 삼천포대교공원과 대방진굴항, 초양도,  늑도에서 길이 끝이 난다. 


’한꺼번에 달려들어 빗발치듯 화살을 퍼붓고 총통을 바람과 우뢰같이 쏘아대니 화살에 맞은 적의 수효가 몇 백 명인지 헤아리기 힘들었다’ - 난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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