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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an 06. 2020

정산(定山)인의 노트

청양 정산향교

고추 하면 생각나는 고장 청양의 옛 이름은 정산이었다. 왕지진(王之津)을 통하여 부여와 연결된 정산은 금강유역에 강창(江倉)이 있어 잉화달천(仍火達川)과 치성천(致城川) 연안 평지에서 생산된 세곡을 운반한 곳이기도 하다. 유학자들이 위와 아래를 오가다가 정착하여 살았다고 해서 붙여지기도 한 정산이라는 지역은 도로 개통으로 인해 지역민들이 아니고는 찾아가야 하는 곳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대면(大面)과 잉면(仍面)을 합쳐 정산면으로 한 다음 청양군에 병합하게 된다. 

단군신화 속에서 곰이 쑥과 마늘만을 먹고 사람이 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21일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사람 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향교는 공부하는 이들이 일상적으로 게으름을 탈피하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의 공간이다.  게으름을 방조하는 것은 가장 조용하고 가장 저렴하며 가장 확실하게 싫은 상대방을 망가트리는 방법이다. 그 상대방이 자신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정산향교는 참 오래간만에 찾아온다. 아마도 향교를 탐방하러 다니는 곳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가장 먼저 와본 곳이기도 하다. 공주, 청양, 보령을 잇는 도로가 개통되기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입구에서 만나는 건물의 위용이 정산이라는 지역이 과거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상상하게끔 만들어준다.  

지금 정산향교는 보수정비공사 중이었다. 작년 여름부터 진행된 이 공사는 올해 1월에 마무리가 될 예정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주기적으로 보수정비를 해야 한다. 지금은 한참 벽체 공사가 마무리 중에 있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을 전격적으로 천거했던 서애 류성룡은 유학에 있어서 자주 거론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의 서애선생 문집에는 '생각하는 것을 중심으로 공부한다'라는 부분이 나온다. 생각할 사는 밭 전자 밑에 마음 심자를 붙인  것이다. 밭 전은 갈아서 다스린다는 뜻으로 한곁같이 마음 밭을 잘 갈아 다스리듯이 정일의 공부나 독서 방법 역시 이와 같다고 한다.  

정산향교는 정산면의 조용한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겨울에도 조용하지만 이곳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언젠가는 봄소식이 전해지지 않을까. 


홀로 누워 천하의 조화와 이치를 익히고

문을 닫고 있노라면 해도 더디게만 지네.

고요히 산새들 지저귀는 소리 듣고 있자면

봄소식 제일 먼저 알겠구나


유재건, '이향견문록'


벌써부터 봄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면 나름의 의미를 찾아가면서 살아가는 모양이다.  

 충청남도 기념물 제132호로 지정되어 있는 정산향교에서는 충효 예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매년 두 차례 하는 충효 예교실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 운영이 된다고 한다.  오늘 한 가지 일을 행하고 또 내일 한 가지 일을 행하는 일을 오랫동안 한다면 자연스럽게 세상 온갖 일에 통달할 수 있다고 한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논산 돈암서원의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선생이 현감으로 계시는 옛현이 정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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