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Jan 11. 2020

애한정을 오르며

구슬은 꿰어서 보배로 만들다.  

조선 선조(재위 1567∼1608) 때의 유학자인 박지겸이 세상을 피해서 은거하던 곳이었던 괴산 괴강 변의 애한정을 올라가는 것이 이번에 세 번째다. 광해군 6년(1614)에 지었으며, 그의 호를 따서 애한정이라 하였다. 선대의 위대한 사상과 정신을 배우기 위해 오르는 것은 사람의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는 역사의 현장에 조용한 분위기와 새소리가 전하는 분위기를 느껴보며 사색해보는 시간이다. 

건물 규모는 처음 지었을 당시에는 앞면 3칸·옆면 1칸 반의 작은 건물이었으나 수리를 하면서 규모를 넓힌 것으로 보고 있다. 옆에 자리한 농업역사박물관도 돌아보았지만 애한정만큼은 겨울에 사람이 없을 때 오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다산 정약용은 결과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하였던 사람이다. 우리가 하기에 달려 있으며 우리의 상을 우리가 만들어 놓고도 그 상을 보고 그렇게 생겨서 그런 일을 한다고 하면 어리석은 것이라고 말하였다.  

애한정은 정문이 아니라 옆으로 나 있는 쪽문으로 들어가면 건물로 나아갈 수 있다.  팔작지붕ㅇ집으로 애한 정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애한정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50호로 1978년에 지정이 되었다.  

애한정을 돌아보고 위아래로 이어진 길을 돌아보면서 다녀본다. 한 가지 일을 할 때마다 그 속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후세를 생각하며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도록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선비들의 정신이기도 하다.  

괴산 하면 계곡이 유명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던 곳이 아닌가. 박지겸은 '애한 정기'에서 애한정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이야기하고 애한 정이라 이름 지은 연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포구에 때때로 점점이 뜬 배들이 보이더니 (浦口時看點點)

안개 걷히자 노 젓는 소리 속에 말소리 들리누나. (霧開人語櫓聲中)

배를 불러 대궐 소식을 묻고자 하는 것은 (呼船欲問東華信)

이 앞강이 바로 한수와 통하기 때문일세. (爲是前江與漢通)


이정구의 애한정 팔영(八詠)

괴강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가면 박상진(朴商鎭) 효자문을 만날 수 있다. 박상진은 함양 박 씨로 효를 행동으로 실천한 사람이었다. 박상진의 9대 조가 박지겸(朴知謙: 1549-1623)으로 이곳 괴강가에 애한정(愛閑亭)이라는 서당을 짓고 후학을 가르쳤으니 대를 이어 괴산의 괴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만나고 그 정신을 이어간 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시의 냄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