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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29. 2015

대호

운명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위안부 문제가 작일 타결되었다. 박정희 정권 때 한일수교 이후에 끊임없이 일본을 거슬리게 했던 기시가 빠진 셈이다. 외교력은 국력이라는 말이 있지만 외교의 목적은 실리와 명분을 균형 있게 가져가는데 있다. 결과적으로 이 협상 타결은 일본과 그 이면에 있는 미국의 승리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어떤 민족을 말살시키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정신을 공략하는 것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일본 전 열도를 통일시킨 일본은 그런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정신을 공략함과 동시에 그 안에서 분열을 획책하면 효과적이다.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돈을 벌고 성공하고 싶은 사람들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우리는 친일이라 부른다. 1925년, 조선 최고의 명포수로 이름을 떨치던 ‘천만덕’(최민식)은 더 이상 총을 들지 않은 채, 지리산의 오두막에서 늦둥이 아들 ‘석’(성유빈)과 단둘이 살고 있다. 만덕은 자신만의 사연으로 인해 더 이상 호랑이 사랑을 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랬듯이 일본은 조선 땅에 있는 온갖 동물들을 사냥하고 그 씨를 말려버리려고 했다. 그중 호랑이는 최고의 수집대상이었다. 지리산 산자락에 있는 마을은 산군(山君)으로 두려움과 존경의 대상이자,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인 ‘대호’를 찾아 몰려든 일본군들이 있었다.




대호는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호랑이와 인간의 대결이라고 생각되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는 조선땅에 남은 마지막 조선의 정신을 죽이려는 일본과 끝까지 그 정신을 유지하려는 한반도의 기운과의 대결처럼 보였다.  먹고살기 위해서라지만 일본군의 앞잡이로 도포수 ‘구경’(정만식)은 ‘대호’ 사냥에 열을 올린다. 조선 최고의 전리품인 호랑이 가죽에 매혹된 일본 고관 ‘마에조노’(오스기 렌)는 귀국 전에 ‘대호’를 손에 넣기 위해 일본군과 조선 포수대를 다그친다. 


무얼 위해 사는가. 


실제 일제가 한반도를 지배했을 때 조선인이 더 악랄하면서 더 일본인처럼 조선사람을 압박하였다. 조선인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일본은 쉽게 한반도를 장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리산에서 가장 큰 호랑이인 대호를 잡으려고 열을 올린 것은 도포수와 일본군 장교 ‘류’(정석원)였다. 동물들은 동물들만의 길이 있다. 그 길목에 덫을 놓고 기다리는 것이 사냥꾼의 일이다. 과거에는  먹고살기 힘들어서 그랬다지만 지금은 취미로 그러는 일부 사람들을 보면 가장 잔인한 것이 인간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대호는 자신을 잡으려는 인간들을 잔인하게 살육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방어에 가까웠다. 자신의 짝과 새끼를 잔인하게 살해 한 인간들에 대한 대가를 지불한 것이다. 영화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호랑이에서 자신의 새끼로 이어지는 인연의 끈을 그리고 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자취조차 쉽게 드러내지 않는 ‘대호’를 잡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명포수 ‘만덕’을 영입하려고 하지만 끝까지 응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모든 것이 끝났어도 정신이 살아 있다면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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