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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an 21. 2020

환골탈태 ver 1.0

알은 스스로 깨야하는 것

문학적인 측면에서 사용되었던 환골탈태를 사람에게 적용하면 마치 전에 없었던 모습으로 바뀐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상당히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이 된다.  사람이 환골탈태하는 것은 뼈를 바꾸고 태를 빼내는 것이니만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인들이 자주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런 정치인은 지금까지 본 적은 없다. 사람들은 쉽게 조언을 하고 조언이랍시고 비난에 가까운 말을 내뱉는다. 타인에게 비난에 가까운 말을 듣고 변하는 사람은 없다. 더 방어적으로 자신을 지키려고 할 것이다. 계란은 남이 깨면 간단한 요리 재료로 한 번만 사용되지만 스스로 깨면 병아리가 되어 닭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쉽게 평가하고 그다지 도움이 되지도 않는 조언을 한다.  다른 사람의 단점이나 결점을 발견해서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 사람 내면 속의 힘을 찾아 서서히 끌어내는 것은 정말 어렵다. 사람들은 어려운 방법 대신에 쉬운 방법을 찾는 것일 뿐이다.  

탑정호에는 언제 광장이 생겼는지 탑정호를 지탱하는 댐 위에 공원이 만들어져 있었다. 논산의 혼이며 정신이라는 계백장군의 실루엣과 함께 말이다. 계백이 5천의 결사대를 이끌고 신라 10배의 적을 막기 위해 황산벌로 나온 것에 대해 무모하다고 생각하지만 계백으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당시 신라군은 전통적으로 성을 하나씩 점령하면서 전쟁하는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지 않고 전격전으로 부여로 향했다. 소수로 다수를 상대할 수 있는 성에서의 방어전을 하려고 한다면 신라군은 그냥 지나칠 것이 뻔해 보였다.  

최후의 방법으로 신라군의 진격 경로의 황산 벌판으로 계백은 5천의 결사대와 함께 나아갔다. 신라와의 접경지역에 조밀한 방어선을 구축하였다면 시간을 조금 더 끌 수 있었겠지만 그것도 유효하지 않았을 수 있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프랑스가 독일의 침공을 대비하며 마지노 장군이 열심히 방어선을 구축하였지만 독일의 전차부대는 가볍게 다른 곳으로 우회하여 마지노선을 무력화시켰듯이 말이다.  

조선 태조의 아들이었던 이방원은 자신의 왕위에 위협이 되는 형제를 제1차 왕자의 난과 제2차 왕자의 난 때 제거해버렸다. 그 화에서 벗어난 사람 중 방의(芳毅)가 있었다. 아버지는 이성계이며 형은 정종이며 동생은 태종이다. 그는 1차 왕자의 난과 2차 왕자의 난 때 모두 방원 편에 서서 화를 피했을 뿐이 아니라 개국공신 1등에 추록되었으며  좌명공신 2등에 책록 되며 익안대군이 되었다. 논산시 가야곡면 등길 129에 있는 조정서원은 익안대군의 증손자인 이현동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곳이다.   

조선 전기에는 형제의 난으로 인해 피바람이 크게 두 번 불었다. 개국시기에 이방원이 주도한 왕자의 난과 단종의 왕위를 빼앗기 위해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이다. 이들 가문은 첫 번째의 난 때는 승자의 옆에 서 있었다면 두 번째의 난 때는 단종의 편에 서 있었다. 단종이 수양대군의 압박에 못 이겨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이현동은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간청하였다. 그렇지만 결국 단종은 왕위를 내주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는 산으로 들어가 농맹아라고 칭하고 일생을 통곡 속에서 생활했다고 알려져 있다.  

한 세대가 보통 30년으로 계산하니 1차 왕자의 난(1398)과 계유정난(1453)의 차이는 55년이 두 세대쯤 지나갔을 때 일어난 것이다. 환골탈태는 결국 스스로 이루어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냥 옆에서 마음으로 지지해주는 것 이상으로 무언가를 더해주면 바뀌지 않는다. 알은 품어줄 수는 있어도 깨어서는 안 된다. 밖에서 깬 알은 그냥 프라이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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