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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an 23. 2020

골품제 (骨品制)

부성군 태수 최치원 6두품에 막히다. 

설렁탕, 곰탕, 육개장, 짬뽕 등 우리의 문화에서 뼈를 우려서 육수를 내는 것은 우리의 오래된 식문화이다. 뼈마다 우려 나오는 영양소가 다르고 맛도 다르기에 적합한 것을 골라서 뼈를 우린다. 이는 동물에만 해당이 될까. 오랜 역사에서 우리는 사람의 뼈에도 등급을 매겼다. 대표적인 사례로 골(聖骨)과 진골(眞骨)이라는 두 개의 골과 6두품으로부터 1두품에 이르는 6개의 두품을 포함해 모두 8개의 신분계급으로 나눈 신라의 골품제도가 있다. 즉 사람의 뼈에도 등급이 있기에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가 없었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아무리 노력을 하려고 해도 진골 바로 다음가는 6두품은 득난(得難)이라고 불린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주요 관청의 장관이 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학자·종교가 또는 사상가가 되는 길을 택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대표적으로 원효(元曉)와 최치원(崔致遠) 등은 모두 6두품 출신이었다.

서산에는 서산시에서 멀지 않은 부춘산 자락에 자리한 서광사가 있다. 서광사는 경순왕 2년 (928)에 지어진 사찰이다. 서광사에는 관음전이 주요 법당이며 전 내에는 관음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대경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고 있는데 이 부근은 최치원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부성군(서산시)의 태수로 부임하여 근무한 것이 진성여왕 7년(893)으로 근무할 때 이곳에 암자를 짓고 글공부를 했다고 한다.  

부춘산 남쪽의 가장 큰 골짜기에 위치한 서광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이며 서산 팔경(瑞山八景)의 제5경인 선암 모종(仙庵暮鐘)으로 알려져 있다. 부춘산은 서산분들이 자주 산행하는 산이라고 한다. 

최치원이 관료로 근무했던 마지막 행적은 서산이라고 볼 수 있다. 최치원은 부성군 태수로 재직 중이던 893년 당나라에 보내는 하정사(賀正使)로 임명되었으나 흉년이 들고 각지에서 도적이 횡행하여 가지 못했다. 이후 894년 2월 진성왕에게 시무책 10여 조를 올렸다고 한다.

 그가 올린 시무책의 내용을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골품제 사회의 누적된 모순이 심화됨에 따라 나타난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6두품의 한계를 느끼면서 포부를 마음껏 펼쳐보지 못하는 자신의 불우함을 한탄하고 관직에서 물러나 산과 강, 바다를 유람하며 살다가 서광사가 창건되기 20년 전인 908년에 행적이 사라져 버렸다. 

서광사가 창건되기 전에 최치원은 이곳에 근무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옛 서산 읍지인 호산록(湖山錄)에 보면 부춘산이란 이름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다른 이름으로 불렸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춘산 옥녀봉에서 시작된 골짜기는 부춘산을 휘감아 곡저 평야를 형성하고 있는데 그 물은 흘러내려가 풍전저수지를 이룬다. 서광사에서는 방학 때마다 템플스테이를 하는데 올해 겨울방학의 템플스테이는 1월 31일부터 2월 2일까지 진행이 된다고 한다. 한 몸에 악업과 선업의 씨앗이 같이 들어있듯이 가능성도 한 몸에 있다.  서광사에서 고요해지는 자신을 발견해보기를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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