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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Feb 07. 2020

믿음

공주 정지산 유적

자율주행 기술이 코앞에 다가와 있고 사물이 생각하며 서로 소통하기 시작하는 이때에도 대상에 대한 근거 없는 미신과 같은 믿음은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매우 객관적인 정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확신되지 않은 정보에 왜 흔들릴까. 이는 사회병리적인 현상과도 맞닿아 있다. 스스로를 확신할 수 없는 사람은 목적 없는 흐름 혹은 누가 이끄는 것에 쉽게 무리 지어 다닌다. 그런 것을 이용하는 것이 사람이기도 하다. 의식과 제의는 과거와 현재의 모든 사회의 중요한 행사이며 특징이기도 했다. 공동체 내에서 하도록 기대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각 개인에게 요구한다.

대통령이나 정치인이 현충원을 참배하는 이유는 그것이 상징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는 행동이나 정치적인 행위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암암리에 보여주고 심어주는 것이다.  공주로 도읍을 옮긴 백제의 제사는 지금 정지산이라는 곳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건물은 모두 사라졌지만 정지산에서 왕실의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은 남아 있다. 제의는 깨달음과 신들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상징하기도 하며 죽음과 그 뒤를 이은 재탄생의 여정을 상징하기도 한다. 

겨울이 지나기 전에 공주 정지산 유적을 올라와보았다. 국가마다 제사를 지내는 방법이나 의미는 약간씩 틀려질 수 있지만 백제의 부활을 꿈꾸며 매년 초에는 봄에 생명이 틀림없이 되돌아올 수 있도록 치르는 풍요제 혹은 재생을 가져오는 한 방식으로의 희생을 생각하기도 했을 것이다. 아스텍인들은 인간의 피와 심장을 바치지 않으면 태양은 더 이상 빛나지 않고 우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삼국시대에 와서 왕이 묻힐 때 함께 묻히는 순장문화는 사라져 갔지만 우리가 과거에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했던 행동들을 미래세대가 지금의 우리 세대를 보면 그렇게 볼 수 있다. 

일본 학계는 정지산 유적에서 기와건물터와 함께 발굴된 대벽(大壁) 건물터가 일본의 그것과 닮은 점에 주목하기도 했다. 정지산의 유적을 조사 결과 경북 고령군에 위치했던 대가야를 비롯해 영산강 유역, 전북 고창지역, 일본 스에키 지역의 토기들이 각각 확인되었는데 인근의 여러 고대 국가에서 파견한 조문단이 백제 왕실이 주최한 빈례에 참석했을 것이라는 추론을 하기도 한다.  공산성을 지척 거리에서 볼 수 있으며 낮은 산인데도 불구하고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정지산은 제사를 지내기에 적합했던 곳이라는 생각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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