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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Feb 05. 2020

정당한 비판

김유신, 김일손, 김우항의 부풍사

현대의 정치에서 정당한 비판을 하는 사람을 찾기가 참 쉽지가 않다. 정당한 비판은 자신의 안위라던가 미래, 혹은 이득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심지어 목숨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조선시대에 그런 비판을 했던 관료들이 적지가 않았다.  그중에 김일손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당시 유력자였던 유자광(柳子光)·이극돈(李克墩) 등 훈구파(勳舊派) 학자들의 부패와 비행을 앞장서서 비판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부여읍에서 다리를 건너서 빠져나오는 길목에 쉽게 지나쳐갈 수 있는 곳에 부풍사라는 사우가 나온다. 1954년에 세워지고 1966년에 중건한 사우로 김유신과 김일손, 김우향 등 3인의 위패를 봉안하여 행사하는 곳이다. 김유신이야 진천군에서 많은 흔적을 남기고 있지만 김일손은 위패를 봉안하는 곳이 많지가 않다. 

훈구파가 일으킨 무오사화 때 죽임을 당했던 것은 춘추관 기사관으로 있을 때는 세조찬위(世祖纂位)의 부당성을 풍자하여 스승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이 씨 왕조 정권의 정당성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 등을 절의를 지킨 인물로 평가하고, 숙의 권 씨(淑儀權氏)의 노비와 토지를 권람이 가로챘다고 비판한 것은 세조와 계유정난 공신인 훈구파를 간접적으로 부정하는 일이었다. 즉 연산군의 정당성을 희석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그의 현실 대응 자세는 매우 과감하고 진취적이었다.

오래된 곳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인물을 배향한 곳이기에 잠시 머물러 본다. 김일손은 자신의 소신을 밝힌 글을 쓴 것 때문에 1498년(연산군 4) 유자광·이극돈 등 훈구파가 일으킨 무오사화 때 권오복·권경유(權景裕)·이목(李穆) 등 사림파 여러 인물들과 함께 처형당했다.

한적하기에 더욱 생각할 것이 많아지는 곳이다. 조의제문(弔義帝文)은 조선 시대 성리학자 김종직(金宗直, 1431년 ~ 1492년)이 지은 제사문으로 항우에게 살해당하여 물에 던져진 회왕 즉, 초 의제를 추모하는 글이다.실록을 열어보고 이 내용을 확인한 연산군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며 사관들에게 따졌고, 이는 그대로 사화로 발전하게 되었다. 

김일손은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 후에 신원되어 중종 때 홍문관 직제학, 현종 때 도승지, 순조 때 이조판서가 추증되었다. 부여의 부풍사를 비롯하여 목천 도동서원, 청도 자계서원에 제향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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