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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Feb 29. 2020

계봉산(鷄鳳山)의 사찰

안개 뒤의 본모습을 보라. 

수많은 닭들 속에 홀로 고고한 자태를 보이기에 봉황은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평범하 사람들 속에 묻혀 있어도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봉황이라는 전설 속의 새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요즘 일련의 상황들을 보면서 사람이라는 존재는 역경을 통해 다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일이 순조롭게 되지 않은 불행한 환경의 역경(逆境)과 코로나 19 같은 역병(疫病)의 역의 한자는 다르지만 의도하지 않게 일이 발생한다는 느낌은 비슷해 보인다. 

청양의 산중에 닭과 봉황의 이름이 같이 붙어 있는 계봉산에는 작은 암자 같은 사찰이 있다. 삼국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니 천년고찰이라고 부를만한 곳이다. 사찰의 건물이라고는 작은 기와집 같은 건물들만 남아 있어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5층 석탑이 없다면 이곳이 사찰인지 알지 못할 정도이다. 새로 지어진 건물로는 법당과 삼성각, 요사채 등이 있었는데 법당 뒤에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건물은 칠성각 등의 역할을 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계봉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연지가 있다. 여름이 아니니 연지인지 모르겠지만 연대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여름에 연꽃이 피어나는 곳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옆에 있는 집은 오래되었고 본당은 뒤틀리고 축대는 허물어졌으며 주변에 나무는 제멋대로 법당에 그늘을 지우고 있었다. 청양의 대표 고찰 장곡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오래된 석탑은 그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이곳이 사찰로서 당당했을 것이라는 추측하게 하게 해 준다.  고려시대 작품이라고 하는데 옥개석, 복발, 앙화의 모습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의 특징이 남아 있다. 기단에서부터 탑신 상륜부까지 딱 균형이 맞아 균형미가 있어 보인다. 기단에서부터 상륜부로 가면서 옥개가 서서히 작아지는 비율이 일정한데 고려시대의 석탑들이 저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는 가만히 있어야 뒤에 있는 것이 보인다. 하던 것을 그대로 하려 하고 계속 휘저으면 더 찾기가 힘들다. 조심할 때는 조심하고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이는 것이다. 구슬을 찾으려면 물결을 가라앉혀야 하는 법이다. 혼자 있는 것이 중요한 때이다. 혼자 있을 때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듯 절도와 단정함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만의 공간을 정갈하게 만들어 간다면 자신의 모습이 타인에게 그대로 보이게 된다. 

계봉산은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계봉산에 축성된 두릉산성은 알려져 있다.   백제 멸망 후에는 부흥 운동의 주요 근거지 중 한 곳으로 추정하고 있는 두릉산성은 정산면 백곡리와 목면 대평리에 걸쳐있는 계봉산 정상의 산성으로 백제시대 도성을 방어할 목적으로 축성된 성곽이다. 우연하게 지나가던 길에 5층 석탑이 이끈 것 같은 계봉사는 조용한 곳이지만 멈추어야 할 때와 움직여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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