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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01. 2022

모순과 조화

청주의 말미장터와 계산리 사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항상 모순적이면서 조화를 이루는 것을 본다. 사람은 땅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기에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공간은 한계적이지만 다른 곳을 가보면 다른 측면을 볼 때가 있다. 2020년대가 되면서 많은 미래 담론들이 나오고 있지만 고유한 가치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것이다. 

이곳에 장터가 섰다는 것은 조금은 의외였다. 국도 25번 피반령 고개 아래 형성된 마을로 한눈에 보아도 청정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큰 산 아래 장이 섰던 곳이라고 해서 말미장터라는 고유한 마을 지명이 남아 있다. 

피반령 고개를 넘나들면서 팽나무 거리에서 쉬고 고기를 팔던 육관대에서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사서 가곤 했었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조금 더디게 가는 겉 같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는데 길을 잘못 든 사람이 걸음을 재촉하면서 계속 가야 할 길을 놓치기 때문이다. 

마을의 분위기는 아늑해 보인다. 청주의 구석구석에는 이런 마을들이 적지가 않다.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이런 풍경이 있는가란 생각이 자꾸 들게 하는 곳이다. 

이제 마을 입구를 지나서 계산리 사지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 본다. 이 마을에는 옛날에 사람들이 여름철 목욕을 즐기던 모죽 바위와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선비가 구슬피 퉁소를 불었다고 해서 퉁소바위라고 불리는 바위도 있다. 

계산리 사지에는 석탑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주변의 땅만 보아도 이곳이 상당히 큰 사찰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발굴조사를 통해 여러 채의 건물터와 함께 크고 작은 돌을 깔아 만든 네모꼴의 구조물(석탑지와 석등, 석상 등을 세웠던 자리) 2기가 확인되었다. 또 오층 석탑을 한차례 옮겼으며, 남북방향에서 동서방향으로 절의 구조가 바뀌었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고 한다. 

탑까지 걸어가는 시간에도 바람이 상당히 분다. 절터에서 서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곳에서 절 건물에 쓰였던 기와를 만들었던 가마터도 발견하였는데 청주 계산리 사지는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기와, 도기, 청자 등과 1970년대 정비사업 중에 출토된 석조상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인 10~12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참되게 아는 것은 사람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데 알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열려 있어야 비로소 그 대상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사회를 보면 서로를 향해 열지 않은 채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 투성이다. 단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이 건립된 일반형 탑이 계산리 석탑인데 전체 높이 5.9미터에 이르는 규모의 석탑에 우주가 아예 새겨지지 않았다. 석탑을 쌓은 방식을 보면 규칙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옥개석의 층급받침은 층마다 변화를 두었는데 1~2층이 5단이고, 3~4층은 4단, 5층은 3단으로 점차 줄어드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출토유물로 추정컨대 고려말쯤 폐사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경험과 실천의 가장 결정적인 특징은 현장성에 있다. 연구실에서 학문에만 몰두하는 사람은 현실에 어둡고 자기 경험을 전체화시켜서 보편적으로 전제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양쪽을 계속 오가는 것만이 자신이 가진 생각의 한계를 넓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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