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에서 만나는 판화의 여명전
여명이 밝아온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 사용해도 무언가 희망이 느껴지는 그런 표현이다. 2020년이 시작되었지만 아직 여명은 밝아오고 있지는 않은 느낌이다. 인생에 희망의 빛이며 상서로운 빛이 비추는 것은 자연과 합일된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색과 향기와 맛과 연결되어 있다. 진천군립생거판화미술관에서는 지난 1월 14일부터 이달 3월 29일까지 판화의 여명전이 개최되고 있는데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한가하게 감상해볼 수 있다.
진천의 상징 종에 대한 이야기를 접해볼 수 있는 이곳에는 종박물관을 비롯하여 판화 박물관도 자리하고 있다. 진천군의 규모에 비해 상당히 크게 조성된 곳이라 처음에 이곳을 왔을 때의 탁 트인 개방감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판화는 학창 시절 때를 제외하고 직접 만들어본 적은 없는 것 같지만 의외로 많은 체험공간에서 판화의 방식을 사용하여 경험을 해본다. 목판·동판·석판 등에 형상을 새긴 뒤 그 위에 잉크를 입혀 종이·천·양피지·플라스틱 등에 찍어내는 것은 대부분 체험 프로그램에서 자주 사용하는 판화의 방식이다.
이곳에 자리한 판화는 김란희, 김형대, 백남준, 조명식, 윤여걸, 하동철의 작품들이 있다. 작품들을 보면 현대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고 팝아트와 비슷한 느낌을 가진 작품들에서부터 사회상과 함께 시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도 있다.
한국에서 판화가 독자적인 장르로서 인정되고 전문적으로 제작된 것은 20세기 초 이후라고 한다. 신라 750년(경덕왕 9)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 無垢淨光大陀羅尼經은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본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이 한국의 판화다.
근대 이전의 우리나라 판화는 주로 종교나 국가 이념의 교화수단으로 쓰였지만 현대의 미술 속으로 들어오면서 다양한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이렇게 전시전으로도 만나게 된다.
대개 시대, 지역 그리고 수요 계층에 따라 각기 다른 취향이 나타나는 것이 판화의 특징이다. 실크스크린·드라이포인트 등 근대적인 판화 기법이 대거 수용되면서 판화인 것처럼 보이면서 판화처럼 안 보이는 작품들도 보인다. 판화는 화가가 밑그림을 그리고 각수(刻手)가 이를 새기기 때문에 내포된 예술성은 화가의 화풍과 각수의 표현력에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전시전에서는 채색된 판화도 간혹 보였지만 대부분 흑백으로 표현된 작품들이 돋보인다. 희미하지만 3월부터 빛이 보이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조금씩 분위기가 전환되는 한 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