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 허용된 접촉
발열은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인플루엔자 22로 인해 3주간의 자가격리기간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녀와 좋은 감정을 가지면서 첫 식사를 한 것이 1주일 전이었는데 우연하게 들른 가게에서 인플루엔자 22가 확진된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었던 이유로 자가격리가 결정되었다. 당분간 강의를 비롯하여 바깥활동을 삼갈 수밖에 없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녀와 이야기했었던 허용된 접촉에 대한 생각을 곰곰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19를 비롯하여 라틴어로 영향을 끼치다는 의미의 인플루엔자 역시 바이러스가 유발하는 감염성 질환을 뜻한다. 발열, 두통, 근육통, 피로감 등의 전신증상과 기침, 인후통, 객담 등의 호흡기 증상을 보이는 것도 비슷하다. 인플루엔자 22라고 명명된 것은 기존의 A, B, C의 타입과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득 앞에 놓여 있는 폰을 바라보았다. 우연하게 그녀와 몇 번 지나치다가 식사를 하기 위해 약속을 하고 만난 그녀의 첫인상은 괜찮았다. 10분 정도 일찍 만나기로 한 레스토랑에 먼저 도착했다. 적당한 조명의 불빛 아래 요즘 트렌드에 맞게 현대식으로 인테리어가 되어 있는 공간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몇 명이냐는 물어보는 종업원에게 두 명이라고 말하자 창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는 그의 뒤를 따라 걸어 들어갔다. 자리에 앉기 전에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김세준입니다."
"안녕하세요. 선희예요. 저 조금 있으면 레스토랑에 도착할 것 같은데 어디세요?"
"예 저도 지금 막 도착해서 자리에 앉으려고 하고 있어요. 제가 지금 앞으로 나갈게요."
"그럼 앞에 있을게요."
전화를 끊은 세준은 들고 있는 가방을 의자에 내려놓고 돌아서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때마침 입구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녀가 보였다. 체크무늬의 코트가 잘 어울리는 그녀는 차분하면서도 칠리 색이 발라진 입술이 경쾌한 느낌의 얼굴색과 묘하게 잘 어울려보았다. 입구로 들어오면서 그녀는 환한 표정을 지으며 인사를 건네었다.
"제가 늦지는 않았죠?"
"아니에요. 저도 방금 왔습니다."
그녀는 머리를 한쪽으로 넘기면서 세준과 주변을 돌아보면서 세준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세준과 선희는 각자의 자리에서 앉았다. 세준은 종업원에게 받은 메인 메뉴를 볼 수 있는 메뉴판을 펼쳐서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그녀는 가방을 옆에 있는 의자에 두면서 메뉴판을 받아서 위에서 아래로 흩어보았다.
"세준 씨? 그렇게 불러도 되겠죠? 어떤 걸 좋아하세요?"
"저요? 어제부터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그냥 스테이크 어떠세요?"
"예? 어제부터요?"
"아니에요. 그냥 해본 말이에요. ㅎㅎㅎ" 세준은 멋쩍은 듯이 밖을 한 번 쳐다보았다.
"아~ 그럼 저도 같은 걸로 주세요." 선희는 메뉴판을 들어서 기다리고 있는 종업원에게 건네주었다.
"결정이 빠르시네요."
주문을 하고 나서 그녀는 앞에 놓여 있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세준도 그런 그녀를 보면서 물을 한 모금 마시면서 말을 이었다. 그녀는 차분하면서도 때론 진지한 주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부담이 없게 이어나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정식 코스는 아니지만 적당하게 시간을 가지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자리여서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어볼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인플루엔자 22로 인해 허용된 접촉에 대한 대화가 이어졌다.
"세준 씨는 남녀 간의 접촉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접촉이요? 아마도 스킨십을 이야기하시는 것 같은데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남자와 여자의 접촉에 대한 관점은 적지 않게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요? 저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허용된 것과 허용되지 않은 것의 차이를 임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있다고 보고 있거든요."
"그렇죠. 남자는 보통 만남의 횟수라던가 환경, 시간, 공간에 따라 여자에게 접촉의 깊이를 결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허용되었다고 생각하면서 흔히 말해서 진도를 나가는 것이죠."
"거기서 남자와 여자 간의 생각 차이가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허용되었다고 생각하는 상대방에게 적당하게 맞춰주는 경우가 많거든요. 사회에서 성과 관련된 문제나 범죄가 발생하는 것은 그 차이가 너무 클 때 발생하고 있지 않을까요?"
"저도 그 생각에는 동의를 해요. 그런데 남자와 여자의 근본적인 생각 구조의 차이도 있어요. 남자는 쟁취한다고 생각하고 조금은 공격적이지만 여자는 선택한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보면 수동적인 입장이죠. 물론 그런 관점이 옳다 그르다고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가치관의 차이는 분명해 있어요."
말을 끝낸 세준은 앞에 놓여 있던 썰어두었던 스테이크를 한 점 집어서 입안에 넣어서 씹기 시작했다. 적당하게 레어로 익혀서 그런지 몰라도 고기의 맛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미디엄으로만 구어도 질긴 느낌이 강해서 보통 레어로 먹는 편이었다.
선희 역시 이런 대화가 나쁘지가 않았다. 적당하게 구워진 고기의 맛도 괜찮았지만 남자와 만나면 흔히 대화의 주제로 꺼내는 직장, 집, 가족, 취미 등보다는 이런 주제가 부담스럽지 않았다. 개개인의 주변을 채우고 있는 자신과 관련이 있지만 일부에 불과한 것에 너무 사람들은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불편했다.
스테이크를 몇 점을 더 먹은 세준은 말을 이었다. "사람과의 사이에 접촉은 정말 중요하지만 허용된 접촉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는 사람은 많지가 않죠. 허용되었다와 허용되었다고 미리 판단하는 것과의 괴리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닐까요"
"서로 간의 공감은 결국 정신이 이어지는 노력일 거예요. 적당히 접촉하고 적당하게 사람을 만나면서 참 많은 실수를 계속 반복하게 되는 것 같아요."
"처음 보았는데 이렇게 가볍지 않은 주제를 나누는 것도 조금 특이하네요. 마치 100분 토론에 나와 처음 만난 사람들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드네요."
"그러게요.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대화의 주제가 이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괜찮았어요."
식사가 끝나고 자연스럽게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사람은 접촉이 필요한 사회적 동물이다. 동물이긴 하지만 다른 동물처럼 본능에 의해서만 접촉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이나 오로지 강함이나 화려함에 의해 관계를 맺는 동물과는 다른 것도 사실이다.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격리가 된다는 것은 자유를 제약하기에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21일 동안 접촉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마음을 다독여본다. 오랫동안 잠자고 있을 것 같은 스마트폰에서 벨소리가 들려왔다. 표시된 전화번호를 보니 그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