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쓰기

사랑은 그렇게 거꾸로 간다.

01-6. 나를 보여주는 일

동성끼리 자신을 온전하게 보여주고 받아들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성소수자가 아닌 이상 우리는 이성에게만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고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오랜 시간을 어릴 때부터 같이 보낸 친구라고 하더라도 이성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한쪽만 보고 판단한다. 이성과 이성이 만남으로서 완벽해질 때 사람은 입체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단순히 상대방과 사귀고 연인이 되고 서로 몸을 섞으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는 없지만 이성에게만 있는 그런 부분이 채워짐으로써의 완벽함이다.


완벽해질 수도 있지만 자신에게는 없었던 것이기에 상대의 부재로 인해 상실감 역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 그래서 아예 시작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사랑을 제대로 해본 사람이던 이성으로 인해 힘들어본 사람이 든 간에 다시 그 길로 걸어가는 것은 두려운 것이다. 보통은 감성지수가 훨씬 높은 여성들은 신체적 관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약자에 놓이게 된다. 작년에 일어난 모 채팅방에서 생긴 사건은 그런 약자를 마음대로 유린했던 집단의 잔인함이 그대로 노출이 된 것이었다.


여자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성에게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단순히 관계를 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남자 역시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지만 여자와는 그 결이 다르다. 성적 감성지수가 유난히 예민한 여자는 관계 후에 남자들이 보통 이해를 하기 힘든 그런 감정의 파동이 생겨난다. 그때 여자들은 그 감정의 파동을 차단하여 나중에 생길 수 있는 감당 못한 파도를 미리 예방하던지 아니면 상대방의 진심을 믿고 같이 파도를 넘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같이 가야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장 약해지는 순간이 있다. 인생에서 많은 경험을 하지만 유난히 약해질 수 있는 시기가 있고 전환점이 있다. 꽃게는 가을에 아주 잠깐 탈피를 하는 순간에 그 딱딱하던 껍질도 마치 생선 표피보다 더 부드러워진다. 이때 꽃게는 가장 약한 순간이다. 그렇지만 그 순간을 외면하면 영원히 그 크기에 갇혀 있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선희는 세준에게 온전히 나를 보여주는 것에 고민을 하고 있었다. 과거의 큰 아픔이 있었기에 알을 깨고 나갔다가 연약한 내면에 심각한 상처를 입고 마음의 문을 닫았었다. 사람과의 관계는 사람에게 정답이 있지만 이성과의 관계에는 상대방보다 자신에게 정답이 있다. 나를 온전히 보여주었을 때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선희 역시 작년 그 사건에 심각한 분노를 느낀 적이 있었다. 평생을 살면서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모두 막아버린 그 집단들은 단순히 성적 결정권을 빼앗아버린 것을 넘어서 인생을 말살하다시피 한 행동이었다. 너무나 가혹했고 스스로의 본능에만 의존하여 여자들을 유린하였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성적 감수성은 그렇게 예민하지도 않고 공감하지 못하는 남자들이 많이 존재한다.


사랑은 어느 시점에서 그렇게 거꾸로 가면서 서로를 채워나가면서 어릴 때 가지고 있었던 그 연약함을 보듬어주고 완전해져 간다. 선희에게 사랑이란 아무도 볼 수 없었던 어릴 적 감수성과 커서 가지게 된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과의 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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