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울 수 없는 허상의 악령
클로젯이라는 영화는 하정우와 김남길이 같이 출연한 영화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정우의 가벼움과 김남길의 적당한 코믹함이 어우러진 것까지는 좋았으나 흔하디 흔한 공포영화의 플롯에서는 벗어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 최근 한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련의 상황과도 적당하게 맞물려 있다. 악령 혹은 악마는 스스로 부족함이 없는 사람에게서는 설자리를 찾지 못한다.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는 사람이나 중요한 사람을 잃어버린 상실감이 큰 사람에게 파고들어간다. 특정 종교나 사기꾼들은 그런 점을 참 잘 알고 있다.
갑작스러운 차량 사고로 아내를 잃은 상원과 그의 딸 이나는 새집으로 이사 가지만 그곳의 방 안에 있는 벽장에서 기이한 소리들이 들려오고 이나에게 이상 증세가 나타난다. 그리고 상원마저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한 지 얼마 후, 이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그런 그에게 경훈이 찾아오면서 이나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상원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모른 채 소통을 하려고 한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익숙한 방법으로만 소통을 하려고 한다. 그 소통의 방법을 이해해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만 그 과정이 길기만 하다. 그걸 감내하면서 다가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정 종교와 사기꾼들은 그 과정을 학습하면서 사람들을 속이는 방법을 잘 알기에 그런 사람들만 찾아다닌다. 세상은 그냥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면 시작하는 것이 가장 솔직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다. 지금 당신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공평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당신이 불공평한 현실을 스스로가 아닌 외부에 이유를 돌렸기 때문이다. 부족한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것이 인생이다.
아이일 때부터 생존과 삶의 방향성을 고민하면서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영화 속의 악령은 그런 아이들을 파고들어가며 그런 고통을 주었던 어른들을 공격한다. 경훈이 벽장 너머 사라진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리킨 이계는 클로젯의 핵심적인 공간이다.
어디서 태어날지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냥 태어나지는 것이고 그렇게 아무렇게나 세상에 나온다. 운 좋으면 부모를 잘 만날 수도 있고 운 나쁘면 부모를 잘 못 만날 수도 있다. 세상은 그렇게 항상 불공평했고 앞으로도 불공평하다. 공평한척하는 세상을 만드는 시스템도 있겠지만 함정은 어디에서나 도사린다. 사람은 살면서 고통을 겪으면서 성장한다. 고통을 외면하면서 덜 아픈 길을 찾으려는 사람에게 달콤해 보이지만 더 고통스러운 길을 열어주는 사람들은 언제나 주변에 도사리고 있다.
지금 당신 삶의 수준은 당신이 노력한 만큼 만들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