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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05. 2020

맛과 여행

부여의 구드레 나루터와 막국수

사회가 잔뜩 움츠려 들었다. TV만 틀면 나오는 숫자를 보고 있으면 긴박하게 돌아가는 영화의 한 장면이 연상될 정도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확진자의 동선과 숫자를 알리는 스마트폰의 메시지의 경고음은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도 사실이다. 알아야 할 정보를 알려주는 것은 필요하다. 그렇지만 사람이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요인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관리되는 소비라고 할까. 갑자기 구드레 나루터에서 바라보는 백마강과 한 그릇의 막국수가 간절해졌을 때 훌쩍 부여로 떠났다. 

개별 차량으로 이동하는 것이 편해서 보통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지 않지만 시간대가 안 맞아서 마음먹은 대로 떠나고 싶을 때 쉽지가 않다. 그렇게 움직이는 동선이기에 다른 사람과 접촉할 기회는 많지가 않다.  구드레나루터는 옛날의 배를 타고 나루터에서 나루터로 움직이는 여행의 시작점으로 알려진 곳이다. 

전에 왔을 때 보지 못했던 실내공간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름하여 백제가 만든 부여라는 공간으로 작은 공간이지만 구드레나루터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관광을 안내하는 곳이다.  

진이라고도 불리었던 나루터는 전국에 그 이름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지금은 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서울의 노량진이라던가 대전의 신탄진이 대표적인 예이다. 부여의 구드레나루터는 그냥 나루터라는 이름으로 남아서 사비시대의 중요한 길목이었던 것을 알리고 있다. 이곳에는 조선시대에 운영경비의 조달을 위해 진전(津田)이 분급되었으며, 진척에게는 위전(位田)이 지급되었다.

나루터로 사람을 넘기고 지역과 지역의 이동이 쉽지 않았던 시기에 역병은 지금처럼 순식간에 퍼지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역병이 걸리는 마을이나 지역의 거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해서 차단하기도 했었지만 지금처럼 글로벌화되고 하루 만에 전국을 오갈 수 있는 시대에는 피할 수 있는 곳도 없다. 


백마강과 같은 큰 강이 흘러서 육로를 차단하는 곳에서는 육로와 육로를 연결하는 배를 정박시키는 시설이 갖추어진 장소가 필요한데 이것이 나루터였다.   나루터는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에 오가는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많아 상대적으로 생업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촌락을 형성하게 된다. 

지금이야 구드레 나루터가 있는 주변에 촌락이 따로 만들어져 있지 않지만 이곳과 저 건너편으로 크고 작은 마을이 있었을 것이다.  금강의 중하류 지역으로 예로부터 토양이 비옥하고 물산이 풍부하여 금강을 이용한 수상 교통의 요지로서 널리 알려진 곳이 부여였다.  

구드레를 걸어 다니다 보니 가끔씩 생각나는 막국수를 먹으러 음식점을 들렀다. 뻔한 맛 같지만 이상하게 자꾸 생각나는 맛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식사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여유롭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금강 강변에 있었던 대부분의 옛 나루터는 근대화의 영향으로 대부분 쇠퇴해갔지만 부여에 있는 구드레나루터는 지금도 백제가 어떤 교역을 했는지 상상하게끔 만들어준다. 부여는 도시화가 되지 않은 곳이기에 다른 도시처럼 육로가 발달하고 교량이 개설되면서 거의 사라진 나루터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다른 도시의 나루터의 일부는 복원이 추진되고 있지만, 급속한 생활의 변화로 대부분 흔적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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