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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06. 2020

독락정(獨樂亭)

홀로 즐거움을 느끼는 공간

"맑게 흐르는 강물은 십리 길의 깨끗한 모래 위에 거울처럼 열려있네" 옥천의 독락정이라는 정자의 상량문에 적혀 있는 문구다. 그 당시 흐르는 강물은 대청호반으로 바뀌어 있지만 풍경은 여전히 괜찮은 곳이다. 선비들이 독락정이라는 정자에 찾아와서 풍광을 보면서 시를 짓고 술 한잔을 나누었을 것이다. 독락정이라는 정자는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물리쳤던  초계주씨 주몽득이라는 사람이 정자를 짓고 머물렀다고 한다.  

독락정을 찾아가는 길은 둔주봉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초계주씨는 주나라의 왕손이었지만 주나라가 멸망한 이후 주황이 신라로 들어와 초계라는 지방에 머물러 살면서 초계를 본관으로 하였다. 초계주씨의 세거지로 전국에 여러 곳 있지만 충북 옥천군에는  안남면과 이완면에 있다.  

절충장군과 첨지중추부사의 벼슬을 지낸 주몽득은 임진왜란 때 왜군과 싸움에서 승전을 하기도 했다. 이후 1607년(선조 4)에 정자를 세웠지만 이후 사라진 것을 1771년(영조 47)에 중건한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정자 이름에 독락이라는 이름은 송나라 학자 사마광이 정계에서 물러난 후 은거하며 낙양에 조성한 독락원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독락정이 자리한 안남의 옛 이름은 안읍이었다. 안읍은 신라의 아동혜현(阿冬兮縣)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동혜의 아(阿)는 수(首)의 뜻이고 동(冬)은 읍(邑), 또는 고을의 뜻을 가진다. 그러므로 안읍은 수읍(首邑), 즉 고대부족국가의 통치자가 있었던 고을이라는 왕읍(王邑)의 뜻을 가진다. 신라가 있기 전에 부족국가가 지역마다 있었을 때 이곳은 사람이 모여 살았던 곳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다.  

오픈되어 있는 안으로 들어가 본다. 독락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전면 한 칸은 퇴칸으로 처리해 툇마루를 두었다. 잘 관리가 되어 있어서 지금도 활용이 가능한 건물이다.  

2018년 해체 보수공사에서 원래 온돌방이었음이 확인되어 온돌을 복원하여 방이 두 개가 현재 만들어져 있다. 

대청호반의 맑은 물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다. 요즘에는 주말에 외출을 자제하면서 홀로 혹은 가족끼리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 시간이야말로 홀로 깨닫는 즐거움의 길을 찾는 기회가 아닐까. 분명한 것은 3월이 지나고 4월이 오면 사람들의 소비패턴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대기업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철수를 선언한 것은 변화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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