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락정(獨樂亭)

홀로 즐거움을 느끼는 공간

"맑게 흐르는 강물은 십리 길의 깨끗한 모래 위에 거울처럼 열려있네" 옥천의 독락정이라는 정자의 상량문에 적혀 있는 문구다. 그 당시 흐르는 강물은 대청호반으로 바뀌어 있지만 풍경은 여전히 괜찮은 곳이다. 선비들이 독락정이라는 정자에 찾아와서 풍광을 보면서 시를 짓고 술 한잔을 나누었을 것이다. 독락정이라는 정자는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물리쳤던 초계주씨 주몽득이라는 사람이 정자를 짓고 머물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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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정을 찾아가는 길은 둔주봉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초계주씨는 주나라의 왕손이었지만 주나라가 멸망한 이후 주황이 신라로 들어와 초계라는 지방에 머물러 살면서 초계를 본관으로 하였다. 초계주씨의 세거지로 전국에 여러 곳 있지만 충북 옥천군에는 안남면과 이완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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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충장군과 첨지중추부사의 벼슬을 지낸 주몽득은 임진왜란 때 왜군과 싸움에서 승전을 하기도 했다. 이후 1607년(선조 4)에 정자를 세웠지만 이후 사라진 것을 1771년(영조 47)에 중건한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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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이름에 독락이라는 이름은 송나라 학자 사마광이 정계에서 물러난 후 은거하며 낙양에 조성한 독락원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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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정이 자리한 안남의 옛 이름은 안읍이었다. 안읍은 신라의 아동혜현(阿冬兮縣)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동혜의 아(阿)는 수(首)의 뜻이고 동(冬)은 읍(邑), 또는 고을의 뜻을 가진다. 그러므로 안읍은 수읍(首邑), 즉 고대부족국가의 통치자가 있었던 고을이라는 왕읍(王邑)의 뜻을 가진다. 신라가 있기 전에 부족국가가 지역마다 있었을 때 이곳은 사람이 모여 살았던 곳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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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되어 있는 안으로 들어가 본다. 독락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전면 한 칸은 퇴칸으로 처리해 툇마루를 두었다. 잘 관리가 되어 있어서 지금도 활용이 가능한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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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해체 보수공사에서 원래 온돌방이었음이 확인되어 온돌을 복원하여 방이 두 개가 현재 만들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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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반의 맑은 물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다. 요즘에는 주말에 외출을 자제하면서 홀로 혹은 가족끼리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 시간이야말로 홀로 깨닫는 즐거움의 길을 찾는 기회가 아닐까. 분명한 것은 3월이 지나고 4월이 오면 사람들의 소비패턴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대기업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철수를 선언한 것은 변화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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