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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07. 2020

마스크

코로나 19라 쓰고 마스크라 읽는다. 

코로나 19는 전염력을 제외한다면 그렇게 치명적인 질병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정부의 선제적인 대응과 언론, 유튜브의 가짜 뉴스들이 겹쳐지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코로나가 한국에서 발병하고 나서 한 번도 마스크를 사기 위해 마스크나 마트를 방문해본 적도 없고 공적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줄 서본 적도 없다. 때마침 작년 말부터 치과진료를 받으면서 방문할 때마다 주는 새 마스크와 지인과 식사를 하다가 주류회사에서 이벤트식으로 준 마스크 등이 있었는 데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굳이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가지 않으면 마스크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여분의 마스크를 쟁여둘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나 언론에서 하루에 생산할 수 있는 마스크 생산량과 국민의 수를 비교하면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마스크의 수를 연일 보여주고 있다. 어떤 시점과 종점을 정하고 모든 국민이 하루에 하나씩 꼭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가정이 있다면 부족할 수는 있지만 사실 부족할 이유가 없다. 중간 유통업체에서 매점매석을 하지 않고 굳이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 놓일 때 마스크를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다면 이처럼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말 마스크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의료계에서 종사하는 사람이나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대면해야 하는 업종에 있는 사람들은 필요하다. 그렇지만 굳이 이런 때에 대규모의 모임이나 종교활동을 하기 위해 마스크를 써야 할까.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말을 했지 네 이웃을 감염시켜라라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를 성찰하기 위한 책 한 권은 제대로 읽지 않으면서 사후에 희망적인 곳으로 가기 위함이나 현세에 돈 많이 벌고 성공하기 위한 바람을 위한 기도를 한 달쯤 쉬면 안 될까?


사람들이 현명하게 행동하던 시류에 휩쓸리든 간에 자유는 있지만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동을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신천지의 활동을 모두 추적하려고 하지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사회가 자제를 말하지만 그들의 일탈에 가까운 복음 활동은 어디선가에서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해악을 생각하는 것보다 자신의 활동과 이익이 우선인 사람들이 참 많다. 


코로나 19라 쓰고 마스크로 읽는다는 느낌이 들만큼 마스크가 이토록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을까. 마스크를 생산과 배급의 방식으로만 접근하면 항상 부족하고 비대칭적인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1주일에 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마스크가 2매! 이런 식으로 대책을 발표하는 것이 최선이었을까. 생산된 마스크는 유통기간이 있어서 한없이 보관할 수가 없다. 사람들도 너무 불안해하면서 원래 가격보다 높게 설정된 마스크를 구입하지 않고 자신의 생활방식을 잠시만 바꾸면서 기다리면 그들의 매점매석은 의미가 없다. 


언론의 순기능을 기대하기가 힘들다는 것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느끼고 있을 것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받을 경제적인 여파를 가장 많이 받게 될 사람들은 소시민이다.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어차피 손해 볼 것이 없다. 이 상황이 종식되면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대면이 필요한 서비스업은 그 시간만큼 그냥 가치가 사라진다. 상황이 종식되었다고 해서 지난 2월, 3월에 못 받았던 서비스를 받기 위해 몇 배로 늘리지 않기 때문이다.  


동행과 공감이 필요한 시기를 위해 집단지성이 어떤 것이 보여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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