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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10. 2020

민중문학 (民衆文學)

포석 조명희가 걸어간 길

국민과 민중은 의미가 비슷해 보이지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조금 다른 느낌이다. 민중의 민주주의적이고 휴머니즘적인 지향을 담은 문학을 민중문학이라고 정의한다. 사람은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지만 그 현실이 다를 수밖에 없다. 요즘처럼 집에서 지내야 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더라도 각자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다. 현실 반영을 중시하는 리얼리즘 문학을 민중문학이라고 볼 수 있다. 

포석 조명희가 지향한 민중문학은 한국문학의 한 흐름을 이끌어간 문학이며 사회운동과의 연계와 문학운동의 흐름이 담긴 휴머니즘적인 지향성이 있는 문학이다. 이는 일제강점기의 계급문학과 비교될 수 있다. 당진의 심훈이 쓴 상록수 같은 작품이 노동자 계급의 정의를 실현하는 계몽 문학의 성격이 강했다면 민중문학은 민중이 주체 개념이다.  

포석 조명희는 당진의 심훈과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사람이기도 하다. 가난한 양반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중앙 고등 보통학교를 중퇴하고 방황하다 3·1 운동에 참가해 투옥되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 낙동강은 이전까지 자연발생적인 수준에 머물던 신경향파 문학을 목적의식적인 프로 문학으로 발전시킨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한국인들은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기도 했었다. 이렇게 그들의 땅에서 살지 못하고 흩어진 사람들이나 공동체를 총칭하는 것을 디아스포라라고 하는데 이는 유대인들에게서 비롯이 되었다. 최초의 중요한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BC 586년의 바빌로니아 포로 때문에 생겼다.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역할과 민족적 동질성을 유지할 필요성 및 그 중요성에 대해서 매우 다양한 견해를 갖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한민족은 민족적 동질성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임시정부를 세우고 정신적인 방향성을 따라갔다. 

그는 희곡도 쓰기도 하고 평론을 하기도 했다. 때론 시를 발표하기도 했는데 10월의 노래라는 시가 있다. 

디아스포라 안에서의 한국인의 삶과 문화는 동화(同化)와 문화적 특성의 상실로 말미암아 민족의 혼이 위기에 처해 있었다. 문학작품은 그 자체만으로도 힘을 가진다. 

그는 1920년대에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였는데 낙동강이나 농촌사람들, 아들의 마음 등은 초기의 시나 희곡에서 보여주었던 낭만적이고 관념적인 표현에서 벗어나 사실주의에 입각해 일제강점기의 지식인의 고뇌, 농촌의 궁핍, 노동자·농민의 계급적 연대와 사회주의 이상을 담아냈다.

1937년 소련은 스탈린의 명령으로 연해주의 동포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강제 이주된 조명희 역시 친일파이자 반혁명분자라는 죄목으로 1937년 9월 체포되었다. 이듬해 5월 11일 조명희는 공개재판도 없이 비밀리에 총살되어 44세의 아까운 생을 마감하였다. 2003년에 진천읍 벽암리에 문학비가 건립되었을 때 포석 문학공원이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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