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마을을 지키는 마송리 석장승

코로나 19로 인해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의 행동이라던가 행태가 드러나고 있다. 필자는 코로나 19로 인해 믿음의 본질을 보게 되었다. 선사시대부터 동굴에다가 벽화를 그리고 하늘에 기원을 하고 솟대를 만들고 신성해 보이는 동물에게서 적당한 비와 햇볕이 비추기를 기대하면서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믿음은 공동체의 안녕보다는 개개인의 안녕을 비는 것으로 변하였다. 나의 안녕이 때론 사회가 원하는 공동체의 안녕에 먼저 우선하는 것도 본다. 코로나 19는 그런 사람들의 행동이 어떠한 문제를 만들었는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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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마송리 석장승은 한 기가 아니라 거리를 두고 세 개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마송리 석장승 앞으로 건물이 지어지고 있는데 어떤 용도인지 궁금했다. 공공의 목적으로 지어지는 것이라면 마송리 석장승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역 간의 경계로 삼거나 성문이나 병영(兵營)·해창(海倉)·관로(官路) 등에 세운 공공 장승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마송리로 들어가는 입구와 다른 곳을 구분했던 것으로 추측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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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기중 거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선돌 형태도 있지만 이렇게 명확하게 그 형태를 알 수 있는 석장승도 있다. 1712년 이 마을 출신 고중명(高重明)[1681~1765]이 무과에 합격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라고 하는데 1호 장승(미륵형 장승)은 높이가 240㎝인데, 그중 약 80㎝가 얼굴이며 2호 장승(문관석 형 장승)의 높이는 260㎝, 3호 장승(선돌형 장승)의 높이는 220㎝이고, 너비는 5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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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돌아다니다가 보면 오래된 지명의 유래를 살피는 재미가 있다. 현대화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대도시의 지명은 대부분 일본에 의해 만들어지고 오래된 지명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음성 역시 일제강점기 때 글자가 복잡하다 하여 오동나무 오(梧)를 써서 오산(梧山)으로 바꾸었는데 예전에는 동네의 형국이 새우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오(鰲)’를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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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만 불고 있는 이곳에 오니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다. 미륵형 장승을 세운 이유는 미륵세계가 전개되기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은 것으로 강력한 믿음을 갖게 되면 사람들은 매사에 자신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석장승은 각종 재앙으로부터 심리적 안정감과 위안을 주는 수호신이기에 요즘 같은 때에 더 든든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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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송리는 멀리 사방으로 꽤 높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고 뒷산이 완경사로 내려오고 있는데 그 기슭 끝 평지나 다름없는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마을이 안정감이 있고 평화로워 보이는 곳에 자리한 석장승은 민족의 믿음과 문화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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