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어야 세상이 보인다-이기정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두 개의 세계가 만나는 것과 같다. 오랜 시간 자신만의 세상과 견해 그리고 인생관이 전체적으로 바꾸어지는 시기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가 않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우는 일은 중요하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초반을 보면 우리는 서로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누구나 다 자기 자신만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이해할 수 있는 것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안중근이나 윤봉길같이 폭압에 저항했던 사람도 있지만 배움으로써 국민을 바꾸려고 했던 사람들도 있다.
김제의 해학 이기정 선생은 황현, 이정직과 더불어 호남 3 걸로 불리는 조선말 실학자이자 항일 독립투사로서 동학농민혁명에도 참여했던 사람이다. 현재 보존되고 있는 해학 이기정 선생 생가는 안채 1동과 사랑채 1동의 초가집이었으나 이후 현 거주자가 안채는 스레트로 개조하였고 사랑채는 전파되어 그 터에 창고를 신축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는 구국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으며 대한자강회와 단학회 등을 통해 교육자로서 민중계몽에 힘썼던 사람이다. 특히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학문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그의 저서로는 해학유서라는 책이 남아 있다. 그는 1968년 건국공로훈장이 추서 되었다.
해학 이기정 선생 생가는 소박하면서도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그런 공간이다. 어떻게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조류처럼 보이지만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지금 역시 세계의 조류가 우리 주변을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슴 한가운데를 뚫고 흘러가면서 모험과 거친 운명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
변화는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시기에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것 같지만 스스로의 내면 속에서는 자신도 알지 못한 가운데 일어나고 있다. 이 시대의 마지막 실학자였다는 이기정 선생 해학의 학문세계는 실학을 바탕으로 하는 당 시대가 필요로 하는 학문을 주장한 것이며, 구국활동에 있어서는 행동적 저항주의, 정치사상에 있어서는 이론에 치우친 급진적 개혁보다는 실천 가능한 점진적 개혁에 핵심을 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