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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21. 2020

아리랑

문학마을에도 봄은 오는가. 

오래된 역사를 가진 민요 중에 아리랑만 한 것도 없다. 고종이 궁중에서 아리랑을 즐겼다는 내용은 매천야록 (梅泉野錄)에도 등장한다. 대원군이 조선의 백성들에게 많은 원성을 자아낸 것은 바로 경복궁 공사 때문이기도 하다. 공사를 위한 징용의 가혹함과 이 공사 경비 조달을 위한 가렴주구가 아리랑에 얽혀서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토속적인 이야기에서 역사와 사회를 대변하는 소리로 변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김제의 아리랑 문학마을은 실내공간은 코로나 19로 운영되고 있지 않지만 야외 공간은 공원 나들이하듯이 돌아볼 수 있도록 개방이 되어 있다. 일제 수탈관을 비롯하여 면사무소로 조성이 된 곳이나 곳곳의 실내공간은 모두 잠정 운영이 중단되어 들어가 볼 수는 없다. 

이곳이 왜 아리랑 문학마을일까. 바로 대원군 시대를 계기로 역사성이나 사회성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일본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한민족의 수탈의 역사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아리랑은 농어촌 전통사회의 민간전승에서 좁게는 도시 민간전승을 거쳐 넓게는 사회 민간전승으로 탈바꿈해간 것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에 모든 자원을 일본이 모두 독점하기 위해 기존의 중심에서 벗어난 곳에 신시가지를 건설하던가 토지정책을 일제히 실시해서 조선인들의 땅을 강탈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일본이 한반도의 자원을 독점하기 위한 것이었다. 

3월 아리랑 문학마을에는 봄이 오고 있었다. 어떨 때 보면 아리랑은 구슬프게 들리기도 하고 때론 흥겹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짝 맞추기에 따라 달라지는데 아리랑은 때로는 밝은 양지의 노래가 되고 때로는 어두운 음지의 노래가 되기도 하는 우리 민족의 노래이기도 하다. 

아리랑 문학마을에는 봄이 오고 있지만 아직 봄의 따뜻함이 전체적으로 퍼져나가고 있지는 않았다. 4월 초가 되면 화사한 꽃이 만개하면서 더욱더 환한 에너지를 전달해줄 듯하다. 

아리랑 문학마을의 정점에는 바로 하얼빈 역이 있다. 하얼빈 역은 안중근 의사가 일본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곳이기도 하다.  1909년 일본 정부는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당시 정세를 이용하여, 일본의 조선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는 러시아의 코콥초프 총리를 만나 한반도와 중국 둥베이 지방의 일본과 러시아 영향권 구분을 의논하기 위해 하얼빈으로 갔을 때 안중근의 저격에 죽음을 맞이한다. 

한국의 내일이 약간은 불안한 시기이기는 하지만 역사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 속에서도 살아남는 강한 적응력을 향유할 수 있었던 아리랑의 정신처럼 결국 그때그때 새로이 새 삶을 얻으며 살아남게 될 것이다. 아리랑은 단일한 장르의 민요가 아니며 사회와 역사의 민속성을 향하여 아리랑은 자신을 확대해왔기에 근대사를 살게 된 한국인의 사랑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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