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남자를 넘어설 수 있는 능력
남자와 여자 다르고 생각 방식 자체가 다르다. 그럼에도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회는 균등하기 때문이다. 시대를 넘어서 여자가 남자를 넘어선 유일한 능력은 아이를 출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자 몸이 출산을 위한 것이냐를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모든 것이 평등하지만 가장 큰 선물인 남자의 아이를 만들어줄 수 있는 능력은 여자에게만 있다. 그것이 있기에 여자는 남자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다. 단순히 관계나 삶을 같이 사는 건 서로에게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 007 노타임 투 다이를 보면서 그걸 다시 한번 느꼈다. 누군가의 아이를 낳고 그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남겨주는 것은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선물이다.
사회에서 자신의 아이를 방치하고 외면하고 심지어 살해하기까지 한 남자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사람의 본능을 외면할 수 없지만 책임을 외면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이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는 것에 대한 축복을 외면하는 건 가장 큰 죄악이다. 화려한 액션과 첩보 액션의 정점이었다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시리즈의 마지막은 아이였다. 이건 개인적인 의견이다. 어디까지나 남자와 여자는 평등한 관계라는 관점에서 균형추를 바꿀 무언가 더 얹어져야 된다면 그것이라는 것이다.
007에서 제임스 본드는 항상 의심과 확신 사이에서 조금의 행동의 변화가 생길 때 돌아선다. 첩보가 일상인 그의 생활에서 여자는 의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남녀관계가 항상 그렇다. 여자는 사랑에 변덕스러우며 남자는 우직하고 싶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007 시리즈 중 가장 마초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거칠면서 부드럽고 여자에게 부드럽지만 믿지 않는(장점은 아니지만 생존을 위해서) 그만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살인면허, 폭력으로 점철된 삶이지만 그에게도 사랑하는 여자는 있었다.
신체적으로 대부분의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지만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약점이다. 비슷하거나 넘어선 누군가와 대결해야 하는 것이 남자의 숙명이다. 007 시리즈를 대중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제임스 본드에게 완전히 믿기 힘든 여자 스완은 가장 여성적이며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에 이미 전 세계를 휘감은 전염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영화를 중심은 사랑하는 여자와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 위한 고군분투라고 볼 수 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MI6가 결국 나선다는 내용은 유치스러운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제임스 본드가 딸에게 보인 헌신과 그 모습은 007 시리즈 중 처음이었을 것이다. 서투르지만 최선을 다하고 자신이 제일 잘하는 총질과 액션으로 보호해주고 희생까지 마다하지 않는 그의 모습이 이번 영화의 핵심이랄까. 미모의 여인이나 멋진 액션과 폭발씬같은 것은 어떤 영화에서 봐도 이제는 감각을 자극하기에 한계가 있지만 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언제라도 유효하다.
과거의 남자 007과 현재의 여자 007과 등치를 시킨 것은 평등한 관계를 보여주지만 여자는 남자가 가질 수 없는 유일한 출산의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없이는 그냥 평등한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불과하지만 그걸로 인해 균형추가 여자에게 기울어진다. 단순히 관계를 가지는 것은 사람이 가진 본능에 불과하지만 축복이라는 아이는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여자가 주는 선물이다. 신은 참 묘한 존재다. 불공평한 신체와 힘을 주고서 가장 큰 능력은 약자에게 준 이유는 무엇일까. 007 노타임 투다이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시리즈를 마지막을 장식할만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