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동정호의 새로운 풍광
사람의 보폭은 키에 따라서 다르지만 보통 60~70cm 정도 일 것이다. 보통의 걸음으로 하동 동정호에 새롭게 만들어진 사랑의 출렁다리를 걸어서 건넌다면 1분남짓이면 가능하다. 연인끼리 와서 포즈도 취하면서 사진도 찍는다면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그것도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가 어떻든 간에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의 길을 걸으면 서로의 거리를 단축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일상을 보는 데 있어서 비일상을 발견하는 습관은 서로 다른 것에서 다른 점과 좋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과의 사이가 이렇게 보이는 하동의 동정호처럼 명확하게 눈대중으로라도 잴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사람과의 관계는 생각의 보폭에 따라 무한대가 될 수 있고 찰나에 가까워질 수도 있다. 우주 영화를 그리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너무 빠르게 가까워지면 마치 스치듯이 지나가서 순식간에 멀어지기도 한다.
하동 동정호는 매년 조금씩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하동이 가까운 곳이 아니기에 자주 내려와 볼 수는 없지만 언제든지 와도 좋은 그런 고장이기도 하다.
동정호에 심어져 있는 버드나무는 간격을 두고 자신의 존재를 보여주고 있다. 생명체들도 자신의 생존공간과 경계가 있다. 그리고 그걸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과연 인간들은 그 간격의 차이를 알고 있을까.
바람이 무척이나 세게 불어서 그런지 출렁다리가 더 흔들리는 느낌이 드는데 하트 표시로 이어지는 이 길에서 생각의 보폭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많지가 않다. 여러 가지 색채로 이야기를 하는데 그걸 하나로 뭉뚱 거려 넘기려고 한다.
매년 올 때마다 섬처럼 보이는 저곳을 건너가는 다리가 있었으면 좋을 텐데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드디어 올해 사랑의 출렁다리가 만들어져서 건너가 볼 수 있었다. 매번 한쪽 면으로만 바라보다가 다른 측면에서 무언가를 바라보아야 비로소 입체적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보통 한 가지 측면으로만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우승을 했거나 상을 받았다. 잘한 것 아니냐? 필자는 그것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좀 더 복합적으로 본다.
버느나무가 바람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면서 내리는 가지 속에 두 두꺼비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한 마리는 수컷처럼 보이고 한 마리는 암컷처럼 보인다. 동정호에도 사랑이야기가 있지만 전래 동화가 보여주는 다른 측면을 생각하곤 한다. 매번 똑같이 보는 일상처럼 보여도 그 속에 다른 흐름이 보인다.
정자에 앉아서 생각해보는 것처럼 억압 없는 자유로운 토론 속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사람에 대한 판단을
삼가는 것은 도덕률이 아니라 내가 유리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면 선악의 구분으로 바라보지 않게 된다.
남녀 간의 사랑의 길은 생각의 보폭에 의해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