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Apr 14. 2020

선비처럼

허벅지를 베고 누워 보내다. 

사람마다 청춘을 이끈 힘의 글은 적어도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코로나 19로 보았듯이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과 만물은 동등하다. 인성과 물성이 동등하다는 시각으로 보면 주변의 사소하고 하찮고 보잘것없는 사물이 모두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가지게 된다. 만약 사물이 변화하는 양상과 형태의 이치를 눈과 서리를 통해 깨칠 수 있다면 그 가치를 감히 매길 수 없을 것이다. 

봄을 맞아 한가한 날 화양구곡을 같이 보고 싶은 사람을 데리고 이곳까지 다시 왔다. 겨울에 온 적도 있고 가을에도 온 적은 있지만 봄에는 처음 찾아와 본 곳이다. 계곡의 물소리가 흘러내려오는 곳에 자리한 암서재는 우암 송시열이 머물던 곳이기도 하다. 암서재가 있는 이 곳은 맑은 물과 깨끗한 모래가 보이는 계곡 속의 못이라는 의미로 금사담이라고 부르고 있다. 

한 번도 저 건너편까지 가본 적이 없었는데 이날은 한 번 건너가 보기로 했다. 계곡 건너편에서 본 암서재와 가까이서 지켜본 암서재는 달랐다. 같이 간 지인은 신발이 편하지 않는 관계로 운동화를 신은 필자만 넘어가 보기로 했다.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니 안전에 충분히 조심하면서 건너가야 한다. 

세상 모든 일에는 그렇게 된 원인이 없는 것은 없다. 단지 우리가 깨닫지 못할 뿐이다.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마치 우연처럼 다가오지만 모든 것은 준비된 것이다. 그 시점에 이르러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이면 어떻게 해도 피하게 되고, 피할 수 없는 일이면 어떻게 해도 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잠시 혼자서 물을 거슬러 올라가며 건너갈 수 있을 정도로 바위가 배치된 곳을 찾아보았다. 생각보다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옛날에 우암 송시열은 어떻게 건너 다녔을까. 그때는 돌다리를 만들어두었을지도 모른다. 

지인은 큰 너럭바위에 몸을 누운 채 한낮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물이 이렇게 맑으니 암서재에서 머물면서 학문하기가 좋았을 것이다. 천하의 선한 선비와 벗을 삼는 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해서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위로 올라가 옛사람을 벗으로 삼는 것이다. 

금사담에 자리한 큰 바위의 곳곳에는 옛사람들이 새겼을 글들이 즐비하다. 이곳까지 오니 잠시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화양구곡 중 제1곡은 경천벽(擎天壁), 제2곡은 운영담(雲影潭), 제3곡은 읍궁암(泣弓巖), 제4곡은 금사담(金沙潭), 제5곡은 첨성대(瞻星臺), 제6곡은 능운대(凌雲臺), 제7곡은 와룡암(臥龍巖), 제8곡은 학소대(鶴巢臺), 제9곡은 파천(巴川)이다. 

건너편에서만 보다가 이곳까지 와서 보니 암서재의 분위기가 남다르다. 다시 돌계단을 걸어서 올라가 본다. 암서재의 안쪽은 문으로 잠겨 있는 상태이며 쇠로 된 담장 밖에서 안을 바라보게 되어 있다. 

안쪽의 암서재기(岩棲齋記)에 '우암선생어병오년간축정사어계남(尤庵先生於丙午年間築精舍於溪南)'이라고 씌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1666년(현종 7) 8월 암서재를 짓고 이곳에 거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맑은 물이 멀리서 흘러내려오면서 자연스러운 소리를 내고 있다. 다시 건너가서 지인의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잠시 눈을 감으면서 내려오는 물소리를 들어보았다. 암서재는 대지 약 65㎡ 정도에 목조 기와로 2칸은 방이고 1칸은 마루로 되어 있는데, 방 안에는 현판 5점이 걸려 있다.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여유다. 매번 바쁘게 오가기만 하다가 계곡의 물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Gloomy Sunda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