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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17. 2020

삼절 (三絶)

한 분야에 능통하면 모든 것이 보인다. 

이루기 힘든 분야에서 지극히 능통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명석한 두뇌, 탁월한 재능, 꾸준한 노력이 모두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지극히 능통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고 그 후에는 다른 분야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된다. 분야가 전혀 달라보아도 그 근본은 같다. 그림 같지만 글 같아 보이고 글 같아 보이지만 음악 같아 보인다. 예로부터 시․서․화가 지식인들이 갖추어야 할 육예(六藝)의 중심 분야로 대두되면서 세 가지를 모두 잘하는 이를 삼절이라고 불렀다. 

 시․글씨․그림 모두 성정에 근원을 두고 마음과 손이 서로 응하여 이루어져서 스스로 오묘해진다. 마음과 손이 서로 동하여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옛 부터 시 잘하는 사람은 반드시 글씨를 잘 썼고, 글씨 잘 쓰는 사람은 반드시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삼절로 불리던 문인화가로 강희안(姜希顔)을 비롯하여, 윤두서(尹斗緖)와 허필(許佖), 이인상(李麟祥), 강세황(姜世晃), 신위(申緯), 김정희(金正喜)등을 대표적으로  뽑을 수 있다. 그중 강세황은 괴산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는 단원 김홍도에게 큰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그의 묘소는 진천군에 자리하고  있다.  

강세황의 묘소의 이정표를 보고  안쪽으로 걸어 올라가 본다. 조선시대의 묘소는 대부분 이렇게 탁 트인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기에 발품을 팔아야 한다. 6세부터 글을 짓고 8세 때 숙종 국상에 어울리는 구장(鳩杖)에 대한 시를 짓는 등 재주가 뛰어났던 강세황은 형 세윤(世胤)이 귀양살이하는 것을 보면서 과거에 응시할 생각을 버리고 조용한 곳에 머물면서 문인으로서 시·서·화를 고루 갖추고 그 깊이를 더해갔다고 한다. 

양지바른 곳에 강세황의 묘소는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시골에 묻혀 살았으나 영조와 정조에게 많은 배려를 받다가 1773년 무려 61세의 나이에 처음 벼슬길에 오른다. 그는 그 후 관계에서 일하다가 1790년 78세에 지중추(知中樞)가 된 다음 해에 세상을 떠난다. 그는 독자적으로 이해한 서화관에 따라 전에 없던 여러 가지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시도했던 사람이다. 

진경산수를 발전시키고 풍속화·인물화 등에도 관심을 보였는데 서양화의 표현기법을 채용하여 색채의 농담으로 입체감을 표현하는 등 여러 부분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다고 한다. 날 좋은 날 한 분야에 능통하여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갔던 사람의 오래된 숨결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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