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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23. 2020

물 흐르듯이

걸어본 벌곡의 영주사

물 흐르듯이 산다는 것은 억지로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논산에 자리한 천년고찰은 대부분 가보았지만 벌곡면에 자리한 영주사는 처음 찾아가 본 곳이다. 저 건너편에 대둔산을 두고 안쪽으로 바랑산의 계곡을 내려오면 충남 논산시 벌곡면 덕곡길 73에 영주사가 둥지를 틀고 있다. 멀리 돌아서 대둔산에 있는 수락계곡은 수없이 가보았지만 가기 전 갈림길로 들어와 본 것은 처음이서서 영주사가 조금은 색다르게 보였다. 

위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상당히 깨끗하다. 사람의 발길이 없으면 없을수록 자연은 깨끗해진다. 이곳을 돌아다니면서 사람 한 명도 보지를 못했다. 현대사회는 온갖 욕망을 자극하는 현란함으로 가득했고 사람들은 그걸 즐겼다. 그렇지만 요즘에는 그렇게 즐기는 것을 자제하라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마음이 자신을  살피기보다 밖으로 내달릴수록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만나게 된다. 

논산의 영주사에는 극락전을 비롯하여 자연석 미륵불과 명부전, 오백나한 전등이 있는데 건물을 찾아보는 것보다는 그냥 산책하듯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자연을 만나는 것만으로 충분한 시간이다. 영주사는 황산벌 전투에서 희생된 넋을 위로하기 위해 창건했다는 사연이 있다. 황산벌 전투를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황산벌 전투에 나선 계백은 기존의 성안에서 버티기의 공성전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김유신이 요충지에 자리한 백제의 성들을 모두 지나쳐버리며 부여로 진격을  해갔기 때문이다. 

당시 백제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넋을 기리는 곳이기도 하지만 자연과의 배치가 어울려서 그런지 몰라도 마음속의 평안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시작되는 바랑산으로 산행은 약 한 시간 정도가 소요가 된다. 

마치 사람들이 모두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의 공간이다. 걷는 발걸음에 돌이 마주쳐서 나오는 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이제 다음 주가 되면 부처님 오신 날이 오지만 사찰에서의 행사는 대부분 취소나 축소해서 진행된다고 한다. 그래도 부처님 오신 날을 위한 연등을 걸려 있었다. 

석탑의 앞에 돌로 된 동자승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가만히 동자승 뒤로 가서 가만히  쳐다보았다. 적지 않은 사찰이 코로나 19 확산으로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해마다 열리던 '보리수 새싹학교' 동자승 단기출가 일정을 취소했다고 한다. 돌로 된 동자승은 코로나 19와 상관없이 언제까지나 저곳에 앉아있을 듯하다. 

영주사와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고 다시 위쪽으로 걸어서 올라가 본다. 공기가 참 맑아서 좋으며 위에는 식수로 사용할 만큼 깨끗한 물이 내려오기에 수질을 오염시키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위에서 내려오는 물이 정수해서 쓸 정도로 맑다니 한 번 마셔보고 싶기도 했지만 목말라죽을 정도는 아니어서 그냥 지나쳤다. 

번잡한 곳보다는 한적한 곳이 좋다. 사람이 많은 곳보다는 인기척이 거의 없는 곳이 좋아지는 요즘이다. 내려오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조금 더 있고 싶었지만 날이 생각보다 차다. 이번 주 주말부터 예년 기온으로 올라간다고 하니 5월에나 다시 한번 와봐야 할 듯하다. 오늘 집에 가면 위층에서 매번 똑같은 연주의 피아노 음악을  듣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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