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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22. 2020

좋은 날

예쁜 구두 신고 걷는 설성공원

작년 딱 이맘때 음성의 설성공원을 찾아서 걸었던 기억이 난다. 365일이 이렇게 빨리 지나갈 줄이야. 게다가 작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올해는 일어나고 있다. 사람이 앞에서 오면 조금은 거리를 두고 자연스럽게 걷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좁은 돌다리를 건너기라도 하면 한 사람이 반대편에서 기다려주는 것이 무언가 예의처럼 느껴진다. 야외에서 마스크를 썼는데도 불구하고 일상은 그렇게 변했다. 

봄을 알리는 전령사라는 꽃은 피어 있지만 우리는 톨스토이가 쓴 작품 전쟁과 평화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인간이 자연을 응대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과정 모두가 전쟁이었다.  나를 지키기 위해,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남들과 싸움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바이러스와 전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수많은 인류의 지성이 인류의 평화를 위해 고민을 해왔는데 그중에 질병이나 바이러스 등과의 전쟁도 중요한 상대가 되고 있다. 

과학기술이 전쟁의 시대를 많이 바꾸었다면 지금은 의학기술이 시대를 많이 바꾸고 있다. 이제 과거와 같이 패권을 위한 전쟁보다는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에 직면해 있다는 생각도 든다. 현재의 질서를 한 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변화가 온다면 인류는 다시 원시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작년과 올해의 설성공원은 다른 느낌이다.  하늘은 눈부시게 파랗고 공원의 곳곳에 피어 있는 꽃도 진하디 진하지만 감정은 다른 상태다. 의학이나 과학과 같은 합리적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세계의 민주의식을 높여야 할 것으로 보이는 시간이다.  

돌다리를  건너서 정자인 경호정으로 가볼 생각이다. 연못과 경호정, 음성군 향토민속자료전시관, 수영장, 게이트볼장, 여성회관, 야외음악당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는 설성공원의 작년 주제는 평화의 소녀상이었는데 올해는 전쟁과 평화다. 

경호정 앞에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29호인 고려시대 음성 읍내리 삼층석탑과 독립기념비가 있고, 음성군 향토민속자료전시관 옆에는 충청북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된 고려시대 음성 오층 모전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멋진 풍광이 펼쳐지는 곳에서 생명 긍정 사상을  그린 전쟁과 평화가 연상된다. 소설 속에서 나타샤를 알게 된 안드레이 공작이 ‘내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느끼고 ‘그녀를 떠올리기만 해도 인생 전체가 새로운 빛에 둘러싸인 듯하다’고 느낄 정도로 강하게 삶의 의지를 표현한 것도 그녀가 가진 발랄한 영혼의 힘 덕분이었다. 

쉽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다들 적응해가고 있다. 설성공원 평화의 손녀상이 세워져 있는 곳 바로 앞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예쁜 구두를 신었다면 눈부시게 파란 하늘과 어울리는 잠깐의 여유를 만끽해보아도 좋을 듯하다. 


“어째서 지금까지 이렇듯 높은 하늘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제야 이것을 알게 되어 나는 정말 행복하다." - 전쟁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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