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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y 04. 2020

생각의 힘

당신은 토론할 자세가 되어 있나요?

최근 일본의 코로나 19의 대처 자세와 일본 국민이 반응하는 것을 보면서 일본의 한계를 보았다. 전체주의로 나아감에 있어서 일본 국민과 같은 자세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단계를 뛰어넘는 국가로 나아가는 데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본 여행을 좋아했던 이유는 그들의 예의 바른 행동과 남들에게 해를 끼치려고 하지 않는 개인주의와 문화재를 잘 보존하여 옛 가치를 지켜나가며 오직 부를 쫒아 음식을 만들지 않는 장인정신 때문이다.


그러나 그 생각은 이번 일로 가려진 그들의 한계가 드러났다. 그냥 개개인의 한계를 스스로 가두고 인정하면서 살았던 결과였던 것뿐이다. 오히려 지배층의 오만과 편견이 일본을 어떻게 국한시켜왔는지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36년간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에 해왔던 수많은 해악들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졌다. 그들에게 부역했던 친일파들이 이후로 수십 년간 대한민국을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도 다시금 보게 되었다. 그들은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다시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이데올로기를 끌고 들어왔다. 어떻게 보면 36년간의 일제강점기에 체계적이고 조직적이며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그 커다란 과오보다 3년 한국전쟁에서 받은 아픔을 크게 부각하여 좌파논쟁으로 국민을 양분해왔다. 


한국이 친일파보다 좌파에 훨씬 분노하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보는가?  게다가 좌파는 실상이 없는 경우도 수없이 많았다. 그 이면에는 부와 권력 혹은 명성을 얻을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용서될 수 있다는 한국인들의 비틀린 욕망에 있었다. 


영어나 수학의 비중보다 역사(한국사)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필자가 학교를 다닐 때에도 지금도 역사의 무게는 영어나 수학에 비해 가볍다. 영어나 수학은 스킬에 가깝지만 역사는 우리의 정신이며 혼이다.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지침서라고 볼 수 있다. 토익점수 몇 점에 수학 점수에 열광하는 부모들을 보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지 물어보고 싶을 때가 많다. 필자 역시 그냥 수학이나 영어를 공부하지만 그냥 그것뿐이다. 남과 다름으로 차별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토익시험이 미루어지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는 기사도 자주 나왔다. 토익 몇 점이 무얼 증명해주는지 왜 그것이 업무와 관련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성실함을 일부 인정한다는 것으로 생각해본다. 


한국 선비들은 대부분 토론에 능했다. 한국 사람들을 보면 토론을 싸움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물론 관련 토론 프로그램들이 TV에 등장하면서 조금 받아들이는 자세가 달라졌지만 아직도 갈길이 멀다. 이런 해악은 일본이 일제강점기에 일본 국민처럼 한국인들을 황국신민화 과정을 거치면서라고 생각한다. 필자 역시 가족이나 친한 지인들이 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머릿속에서 아니라고 생각하면 왜?라고 묻는다.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왜? 그것이 그렇게 생각되어야 하는데라고 묻는 것이다. 내편이면 혹은 내 사람이면 그것이 당연히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교류를 위한 토론을 해보자는 것이다. 영화를 다른 사람보다 훨씬 좋아하고 즐기며 자주 본다. 그렇지만 아카데미가 공정적이면서 효과적인 시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국의 쇼에 가까우며 그들이 주는 명성은 결국 전 세계의 영화산업을 이끌고 나가겠단는 미국의 패권주의의 다른 모습처럼 보인다. 


그런 아카데미에서 시상을 받았다고 해서 매우 칭찬받을 일인지 모르겠다. 국가의 국민이 코로나 19로 인해 수없이 죽어가고 소득의 극심한 불평등으로 하루하루 힘든 삶을 살아가는 기회의 국가라는 미국의 아카데미가 뭐 대단한지 생각해볼 일이다. 그 이면에는 부와 명성을 쌓을 수 있다면 그것은 정의며 옳은 것이라는 인식에 기반한 것이다.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무언가에 동의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알 필요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명 국뽕도 좋아하지 않는다. 코로나 19에 대처하는 국민의 자세와 국가, 이번 총선의 결과를 보았을 때 한국은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어차피 불나방처럼 날라들어서 단타나 소문에 듣고 소문에 파는 수많은 투기꾼들을 제외하고 한국의 증시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투자하기에 투명한 국가의 증시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불투명하고 깜깜이 정보만 노출하는 증시는 오르락내리락 만 반복할 뿐이다.  IMF와 리먼 브라더스 사태까지 한국 국민과 정치, 기업의 문화는 깜깜이 정보와 투명하지 않는 한국의 이면을 보여주었기에 바람에 흔들리듯이 흔들렸다. 


생각의 힘을 키우지 않으면 토론을 하자고 할 때 머리가 아파진다. 마치 싸우자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우리는 일본인이 아니다. 상식처럼 보이지 않아도 그냥 따라가는 국민들이 아니다. 단지 부와 명성만 쫒으며 그 뒤에 가려진 본질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부와 명성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과연 그것이 옳은 것인지 내가 알고 나서 좋다 나쁘다를 말하자는 것이다. 


최근에 인기를 얻고 있다는 부부의 세계를 초반부에 우연히 본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는 담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의 생활을 보면 볼수록 그들은 일을 안 하고 욕망에 따른 짓거리 외에 아무것도 안 하는 느낌이었다. 남편의 불륜에 당당하게 대처하는 여자와 여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멍청한 남자의 이야기와 나름 전문직들의 남녀의 삶이 어리숙하게 그려진다. 


우리는 바꿀 수 있다. 대다수가 부와 명성에 기대어 잘했다고 하는 것을 한 번은 더 생각하고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미국 CNN이 한국의 애매한 북한 전문 언론을 베껴 기사로 만든 것을 다시 재전송한 언론사들의 짓거리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가끔 한국의 국회의원은 왜 존재하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갈 때도 있지만 입법부는 필요하니까란 말로 위로를 해본다. 그래도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국민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왜? 는 생각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것이지 따지려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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